#1327 선정우 (mirugi )
전 지하철에서 전혀 만화를 보지 않습니다. 05/03 03:38 91 line
지하철이고 어디서고, 전 바깥에 나갈 때 애초에 만화책을 들고 나가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나잇살 먹어서 (라고 해도 아직 30대까지는 무려 몇 년씩이나! 남았
다... 라고 주장하고 싶다... -_-) 만화 본다는 것이 창피하다던가 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나잇살이고 뭐고, 또 만화고 뭐고간에 특별히 그것을 부끄러워한다든가
해야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라고 저도 생각하니까요.)
다만 저의 경우에는, 만화를 볼 때에는 항상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침대
에 가만히 앉아서 하나하나 내용을 음미해가면서 읽기 때문에... (그래
서 최소한 어떤 만화를 처음 볼 때에는 TV도 안켜고 음악도 안듣고 아무
것도 안하고 그 만화만 탐독합니다.)
지하철에서 읽으려면 정말 대충 읽어야겠다... 싶은 거나 읽게 되겠는데,
그러려면 처음부터 만화가 아닌 다른 걸 읽고 말죠. 소설이라든가 신문
이라든가... 아니면 음악을 듣던가.
솔직히 아마 저보다 만화를 자주 읽으시는 분도 드물 거라고 생각하지만,
(저'만큼' 자주 읽으시는 분은 뭐 꽤 있겠지만서도. 저 '이상' 읽으려면
최소한 저처럼 백수가 되지 않고서는... 핫.핫.핫.) 그런데도 저의 경
우에 만화 읽을 시간이 부족해서 지하철에서까지 읽어야겠다고 생각된 적
은 한 번도 없군요.
(오히려 항상 읽을 만화책이 부족해서 고민입니다... 역시 떼돈을 벌어
야... 만화책을 한 1억권쯤 갖다놓고 한 번에 읽을 수 있으면 편할텐데
그럴 돈이 없다보니 매년 겨우 백여권 이백여권씩 찔끔찔끔 사서 보려니
짜증이 나는군요.)
뭐 만화를 종교처럼 엄숙하게 읽는 건 아니긴 해도, 최소한 만화책을 읽
을 때만큼은 주변에 아무도 없이 조용한 분위기에서 (이왕이면 새벽이나
주변에 아무도 없는 대낮이 좋음.) 내용을 음미해가며 읽고 싶습니다.
뭐 그렇다고 남들이 지하철에서 읽겠다는데 말리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
습니다만... 아무튼 이런 사람도 있으니 굳이 '만화책을 지하철에서 읽
는다 아니다'가 그리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군요.
더불어... 이런 논쟁은 만화가 많이 읽히고 있는 일본에서도 물론 자주
있던 이야기입니다만, 과거 『고마니즘 선언』으로 유명한 코바야시 요
시노리가 했던 말이 생각나는군요.
이 사람은 사회 전반적인 문제에 관해 작가 자신이 등장해서 자기 생각을
그야말로 마음대로 (본심과 겉모습을 바꿔 말하는 것이 예의로서 받아들
여지는 일본 사회에서는 사실 터부시되는 일이죠.) 말해대는 작가인데...
그도 처음에는 '지하철에서 만화를 읽어야한다!' (아 물론 꼭 지하철에서
만 읽어야된다 말아야한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그만큼 만화의 위상을 높
여야할 것이라는 말이겠죠.) 라고 주장했었습니다.
그런데 이후 말을 바꾸게 되었죠.
어째서냐하면, 바로 만화란 것은 일종의 '서브컬처'... 즉 '주변문화'
입니다. 이런 문화 장르는 그 속성상 사회 자체나 소위 '제도권 문화'들
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나 심지어는 저속하게 비꼬고 비틀어대기까지 합니
다.
즉 현재의 '만화'라는 문화 장르가 지금처럼 만화 팬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 '만화'이기 때문이란 소리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만약 만화가 지하철 안에서도 거리낌없이 볼 수 있을
정도로 제도권 안에 들어가버리면 이미 그것은 더 이상 지금과 같은 '만
화'가 아니게 된다는 뜻입니다.
'만화'란 문화 장르가 과연 제도권에 편입되어야하는지, 또 그렇게 될지
어떨지는 전적으로 만화를 소비하는 대중들이 결정할 문제이고 사실 지금
으로서는 예측하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만화'가 가지고 있는 모습을 상당히 마음에 들어하고 있
는 저로선, 과연 '만화'가 당당히 지하철에서도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
그렇게 좋은 일인지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그것도 제가 지하철 안에서 만화를 읽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일지도 모
르겠습니다.)
음. 이 이야기는 예전부터 대화방이나 오프라인 상에서 꽤 많은 분들께
해왔던 말이라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좀 더 명확히 제대로 써보려고
마음 먹었다가, 항상 그렇듯이 게을러서 여태 못쓰고 있었던 것인데...
결국 이런 식으로 간단히 써버리고 마는군요. -_-
좀 더 자세히 논리적으로 스스슥 길게 써보려는 마음을 먹었던 것이었습
니다만... 뭐 언젠가 어디선가 발표할 날이 올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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