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입니다만...
2003/09/24 17:16 조회 : 74
우연히 mirugi님의 홈페이지에서, 일본에서 중국어권 만화는 단 2종이 출
간되었다고 하신 글을 보고 그게 어떤 작품인지 궁금해져서 여쭤봅니다.
몇 년전에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대만작가 고영의 범천변, 성좌형사 등은 저
는 일본어판의 중역이었나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습니다만 그러면 그건 우
리나라에서 직접 중국어판을 번역해서 출간한 것인지요.
고영의 작품 중 『황원의 미슈아』, 『범천변』은 일본어판을 가지고 있습
니다만 mirugi님께서 말씀하신 2종이 저것인가해서요.
그나저나 우리나라에 중국어권 만화가 그렇게 많이 출간되는줄은 몰랐습니
다. 유소란의 『화왕』 뒤편이 너무나 궁금한데 그건 혹시 다시 안나오려
나...
여담입니다만 마침 『비천무』 일본어판 1·3·4권을 구하게 되었는데, 대
강 훑어본 바로는 원작의 대사의 정적인 느낌이나 독특한 분위기가 많이 생
략되어버린 듯하더군요. 역시 번역에는 한계가 있나 봅니다. 그래도 '人
非人'을 '汚いやつめ'라고 번역한건 좀 아쉬웠어요. 기회가 되면 차근차근
정독해볼 참입니다.
인천공항에서 타이거북스의 우리만화 일본어판들(『비천무』, 한승원씨 작
품 등)을 몇 년전에 보았을때 바로 사지 않았던 것이 새삼 후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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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우 : 말씀하신 2종은 카오융[高永]의 그 두 작품이 맞습니다. 그 외
에 굳이 말하자면 후롱[胡蓉]의 『ZERO CITY』란 작품도 있습니다만, 이건
원안 이시이 류야[石井龍也]/각본 쯔루기나 마이[劍名舞] 등, 일본인들과
함께 만든 것에 작화만 중국인인 작품이죠. 내용적으로도 충분히 일본만화
로 분류할 만 하다고 생각하고……. (2003/09/25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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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우 : 『신 암행어사』나 『푸른 길』을, 굳이 분류하자면 일본만화로
보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작품들을, '한국
만화의 일본 진출'이라는 의미보다는 '일본만화 시장이 드디어 해외 작가에
게도 개방적이 되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봅니다. 폐쇄적인 일
본 문화계에서, 만화 분야도 드디어 외국인 작가의 기용을 시작했다는 의
미라는 것이죠.
물론 그 작품들이 개별적으로 훌륭한 작품인지 아닌지와는 전혀 별개의 문
제입니다. 또한 그런 식의 '한국작가들의 일본 진출' 역시 전 긍적적으로
보고 있으며, 지금도 사업상 다른 작가들의 일본 진출을 돕고 있기도 합니
다만, 하여튼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국 작가의 일본 진출'인 것이지 '한국
만화의 일본 진출'은 아니라는 이야기죠.
마찬가지로 첸웬[鄭問]의 『동주영웅전』『깊고 아름다운 아시아』, 리치
칭[李志淸]의 『삼국지』『제갈공명』도 역시 전 '일본 만화'라고 생각합니
다. 작품적으로는 중국의 정서를 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만, 기본적으
로 '일본의 독자에게 보여주기 위한 중국의 정서'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황미나의 『이씨네집 이야기』나 안수길의 『호랑이』, 오세호의
『수국 아리랑』에도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런 작품들을, 장르
가 다르긴 합니다만 일본에서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와 같은 역할을
하는 만화라고 봅니다. 'exotic 만화'라고나 할까요. 일본인 작가로서는
스메라기 나쯔키[皇なつき]가 특히 동양풍의 엑조틱 만화를 많이 그리는 것
으로 유명합니다만.
마찬가지로, 일본인 작가 무라마사 미카도[村正みかど]가 한국에 와서 그
렸던 『카발리어』는 한국만화인 것입니다. 아무리 그 작품이 전형적인 일
본만화풍이라도 말이죠. 일본만화풍이라고 한다면, 어차피 최근의 소년만
화 대부분은 '일본만화풍'이잖습니까? 조금 더 일본만화에 가깝게 그려졌
다고 해서, 일본만화에 대단히 익숙해져버린 한국 독자들을 타깃으로 그려
진 『카발리어』를 일본만화로 볼 당위성은 없겠죠.
예를 들어 아무리 미국만화의 영향을 강력하게 받았다고 해도, 박동파의
만화는 한국만화고 테라사와 부이치의 만화는 일본만화인 거니까요.
오오토모 카쯔히로가 강력하게 추천하는 대디 구스[ダディ·グ-ス] (필명
은 이렇지만 카나가와현 출신의 일본인 작가입니다)의 만화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만화에 국적이 필요한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입
니다. 박동파보다 훨씬 더 미국만화풍의 그림체 (그것도 '슈퍼히어로풍'이
아닌, 카툰이나 하드보일드풍의)를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 작가의 작
품을 '미국만화'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어차피 만화에 국적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것이 한국만화고 어떤 것이 일본만화냐 하는 문제는, 단순히 데이터베이스
에서 국적을 표시할 때 정도에만 신경쓰면 족할 부분이겠죠. 한국만화라고
구분하지 않더라도 『신 암행어사』가 일본 내에서 한국만화가의 대표적 작
품으로 선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그 작품을 통해 한국 문물을 익히는
일본인들이 늘고 있다는 것도 분명하니까요. (2003/09/25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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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우 : 그러니까 결국, 카오융[高永]의 『荒原的新娘』의 번역판인 『황
원의 미슈아』·『梵天變』 (이건 동일한 제목으로 출간)의 단 2 작품만이,
중국에서 출간된 유일한 본격 중국만화라는 것입니다. (2003/09/25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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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우 : 타이거북스의 경우, 일본에서 읽어본 일본인들의 이야기를 듣더
라도 '번역에 아쉬움이 많다'는 것이 중평이더군요. 사실 뭐 영 마케팅 전
개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팔리지 않은 것이지만, 뭔가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았던 듯. (2003/09/25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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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우 : 국내에서 나왔던 수많은 중국권 만화들은 아마 그냥 중국어를 그
대로 번역한 것일 겁니다. 사실 전세계 그 어느 나라에서도, 중국어권 만
화가 한국만큼 많이 번역되고 있는 나라는 없죠. 요즘 태국이 얼마나 수입
해가고 있는지를 잘 모르겠습니다만……. (2003/09/25 00:27)
선정우 : (화교가 많이 사는 나라에서 중국어권 만화의 '수입'은 많지만,
중국어로 된 원판 단행본의 수입이지 우리나라에서처럼 번역 출간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2003/09/25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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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우 :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국가의 만화를
번역 출간하는 것이 바로 한국입니다. 제가 기획·출간했던 『-vision 한
국만화를 찾는 일본인들』이란 서적에도 글을 싣고 계시는 일본의 대학교수
사지마 아키코씨는,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야말로 만화의 천국"이라고 주
장하시는 분이죠.
저로서도, 작가에게는 몰라도 독자에게는 분명히 한국이야말로 '만화의 천
국'이라는 주장에 일정부분 동의합니다. 동네 서점에서 만화책을 팔지 않
는다는 점과, 작가와 출판사는 물론 심지어 만화에 대해 논하는 연구자들
조차도 '작가주의'만을 지향할 뿐 일본만화만큼 독자를 생각하려 하지 않는
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_- (2003/09/25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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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한국식 '작가주의'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언젠가 다른 기회에 다른 글
에서 한 번, 반드시 본격적으로 짚고 넘어갈 때가 된 것 같다고 생각 중
입니다.
잘못 받아들이면 위험천만하기 그지 없는 사상일 수도 있는 '작가주의'란
단어가, 한국의 만화계에서는 너무 쉽게, 또 지나칠 정도로 남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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