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혹성로보 당가드 A』의 재미(?). 관련자료:있음 [30300]
보낸이:선정우 (mirugi ) 2003-03-14 01:17 조회:215
아래 30289번 글에서는 『로봇대백과』의 표기를 따라 『당가도 A』라고 썼
지만, 사실 영문 표기가 『DANGUARD A』이므로 『당가드 A』 혹은 『단가
드 A』라고 표기를 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는 일반적으로 『당가도 A』
라는 표기가 국내에서 통용되는 점을 감안하여, 『당가드 A』라고 쓰기로
하겠다.
사실 이 『당가드 A』는 대단히 유니크한 작품이다. 1986년 초 MBC TV에서
일요일 오후 6시 5분에 『날아라 스타에이스』란 제목으로 방영되던 당시에
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희한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_-
여기에서는 2년전 모 게임 잡지에 게재했던 칼럼의 내용을 중심으로, 『당
가드 A』의 그 기묘한 내용을 소개해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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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먼저 가장 이상한 것은, 이 작품은 10화가 지나도록 주역 로봇인
당가드 A가 전혀 등장하지 않고 오직 주인공이 로봇을 타기 위해 특훈에 특
훈을 거듭하는 모습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무슨 열혈 스포츠근성물인가?
전 56화의 장편이긴 하지만, 내용의 5분의 1 가까이를 로봇을 탑승하기 위
한 특훈에만 소비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이후 1985년 작품 『초수기신 단쿠가』에서도 5명의 파일럿이 합체하기 위
해 10화를 소비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어쨌거나 1977년 작품인 『당가드 A
』의 이런 리얼리즘(?)은. 어떻게 보면 난데없이 제 1화에서 눈앞에 툭 떨
어진 매뉴얼을 한 번 읽자마자 로봇을 조종하여 적기 2대를 물리치는 (그것
도 한 대는 폭발시키지 않고 멈추는 초인적인 능력을 선보임) 주인공이 등
장하는 『기동전사 건담』의 허무맹랑함과 비교되기도 한다.
아무튼 어째서 이렇게 긴 연습이 필요했는가 하면, 바로 비행 형태인 새털
라이저에서 당가드 A로 변신할 때에 조종석 부분이 분리되었다가 로봇의 두
부[頭部]로 다시 합체한다는, 대단히 귀찮아 보일뿐더러 어째서 이렇게 위
험한 설계를 했던 것인지 조금 이해하기 힘든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변신 로봇이 많았지만, 도대체 어느 로봇이 변신할 때 조종석이 분
리되었다가 변신한 후에 재합체를 한단 말인가. 어쨌거나 이 때문에 전반
부 10화 내내 주인공 타쿠마는 훈련교관 캡틴 단 (사실은 가면을 쓴 아버지
이치몬지 단테쯔)에게 분리·합체를 하는 연습기를 타고 계속 연습만 했던
것이다.
"이런 짓을 하는 데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겁니까!?"라는 타쿠마의 당연
한 질문에, 캡틴 단은 "곧 알게 된다"라고만 대답했다. ……이 설명만으
로 납득하는 타쿠마도 이해하기 힘들지만, 10주 동안이나 주인공이 합체
연습만 하는 작품을 보아준 당시의 시청자들도 대단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
을 것이다. 요새 어린이들 같으면 아마 당장 보는 것을 때려치우지 않았을
까.
또한 이 『당가드 A』는 앞에서 말했듯이 아라키 신고의 미형 캐릭터로 여
성 팬들의 인기를 모았는데, 사실 이보다 앞서 제작되었던 『UFO로보 그렌
다이저』의 영향으로 스토리에 있어서도 여성 팬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부분
이 꽤 많은 편이다.
물론 전체적으로는 『거인의 별』 못지 않게 '아들을 가혹하게 훈련시키는
아버지'를 강조하고 있는 열혈·근성의 드라마지만, 예를 들어 1970년대
로봇 애니메이션에는 반드시 한 번쯤은 등장하는 '여성 게스트가 죽는 전형
적인 멜로 드라마'풍의 제 42화 「이성인 노엘의 미소」 편처럼 여성 팬 취
향의 내용도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이 제 42화는 연출자 카쯔마타 토모하루[勝間田具治]가 『그렌다이저
』의 제 25화 「하늘에 빛나는 사랑의 꽃」에 등장한 '나이다'란 캐릭터를
의식해서 연출했다고 말했다. 『데빌맨』·『큐티 하니』·『겟타 로보』,
그리고 이후 『세인트 세이야』·『북두의 권』의 연출을 맡아 토에이동화
액션 애니메이션의 에이스로 평가받던 카쯔마타 토모하루였지만, 사실 이
「이성인 노엘의 미소」편을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 중 하나로 손꼽을 정도
다.
컷 수를 최대한 줄이고 노엘이라는 등장인물에게 스토리의 진행을 맡겨서
시청자로 하여금 노엘의 감정을 스스로 판단하게 만든다는 참신한 수법도
도입했던 것이다.
제 42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지의 행성 X (……미지의 행성이기만 하
면 무조건 'X'를 붙이고 보는 이 센스는 대체……)에 착륙한 우주공모 재스
담. 그 갑판 위에서 난데없이 트럼펫을 부는 타쿠마는 지평선 저편에서 기
묘한 음악을 동반한 빛을 발견한다. 그 빛을 따라 깊은 안개가 끼어 있는
숲 속으로 들어간 타쿠마는, 거기에서 난데없이 목욕을 하고 있는 여성을
발견한다. (…………)
그림설명> 미지의 행성에 불시착했는데 빨리 고쳐서 탈출할 생각은 안하고
쓸데없이 트럼펫이나 불고 있는 타쿠마.
타쿠마 : 나는 환상을 보고 있는 건가?
노엘 : 아뇨, 저는 환상이 아니예요. 분명히 여기 있습니다.
타쿠마 : 핫!?
노엘 :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타쿠마 : 당신은 이 별 사람인가요? 어째서 제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
이죠? 다른 사람은 없습니까?
노엘 : 호호호호…….
타쿠마 : !?
노엘 : 그렇게 한 번에 다 질문을 하시면 대답을 할 수가 없잖아요.
타쿠마 : 죄송합니다.
(……대체 뭐란 말인가, 이 러브 코미디 만화에나 등장할 듯한 센스의 대
화는……. -_-)
노엘 : 저는 이 별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과 대화가 가능한 것은 텔레
파시로 당신의 마음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엄청난 설정이라니! -_-)
타쿠마 : 그럼 어느 별에서 오신 거죠?
노엘 : 그건 말할 수 없어요. 사실은 이성인인 당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금지되어 있어요. 하지만 트럼펫의 음색이 너무나도 아름
다워서 그만…….
(…………외계인이 '트럼펫'이란 단어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 ;; 게다
가 '트럼펫의 음색이 아름다워서'라는 이유만으로 금지되어 있는 규정을 깬
다니, 이게 대체 말이 되는가! ;;)
그림설명> 잘 생각해보면, 노엘은 분명히 트럼펫 소리를 들었다고 했으니,
즉 타쿠마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그
동안 빨리 옷을 입었으면 될텐데, 일부러 타쿠마를 유혹하려던
것인가? -_-
사실 이 노엘이란 소녀는 마왕성 (……이 센스는 대체 ;;)에서 이 행성 X에
귀양을 와 있었던 것이다. 노엘이 이성인과 접촉한 사실을 알게 된 그녀의
오빠는 통신기를 통해 빨리 타쿠마를 죽이라고 재촉한다. 이 마왕성에서는
'이성인의 피가 조금이라도 섞인 자는 그 이성인의 심장을 대왕님께 바치고
더럽혀진 몸을 정화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규정이 있다고 한다. 사실 노
엘과 그 오빠도 이성인을 사랑하게 된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
미 그 규정에 따라 부모님은 처형당해 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타쿠마를 죽여버리라는 오빠의 말에도, 노엘은 "할 수 없어, 난
할 수 없어. 그 아름다운 마음 속 트럼펫의 멜로디를 들어버린 이상……"
이란, 뭔 소린지도 모를 괴상한 이유를 대면서 거부했던 것이다.
그리고 타쿠마 또한 "피가 섞인 자는 재앙을 불러일으킨다고 해요……"라는
노엘의 말에, "그렇지 않습니다! 미신일 뿐입니다!"라며,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일순간에 부정해버린다. 게다가 한 발 더 나아가서 "내가 살고 있던
지구에서는, 피가 섞인다는 것은 오히려 기쁜 일로 받아들여집니다!"라는
거짓말까지 한다.
……외계인이니까 잘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
다니. 언제부터 지구에서 피가 섞이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였단 말인가! ;;
역사적으로 외국인과의 혼혈조차도 백안시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하물며
외계인과의 혼혈이라니! 무슨 『V』도 아니고!
……게다가 애초부터 겨우 단 한 번 만난 외계인 여성에게 "지구에서는 피
를 섞어도 됩니다!"라니, ……이 말은 마치 이미 그 여성이 자신과 '피를
섞고' 싶어하는 것으로 단정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바람둥이 같으니
라고!
게다가 타쿠마는 "그 대왕이야말로 재앙의 근원입니다!" "자신이 사람들을
지배하기 쉽도록 멋대로 규정을 만들어 강요하는 겁니다. 그런 규정은 깨
버리는 편이 올바른 것입니다!"라고까지 역설한다. …………너는 남의 별
에서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전해져 내려온 규정을, 아무런 배경 지식도 없
이 그렇게 단언할 수 있단 말이냐! ;;
결국 노엘은, 이런 식의 스토리에서 등장하는 여성의 전통을 따라 결국 타
쿠마를 도와주고 죽어버린다. 오빠에게는 "저는 마왕성의 규정보다 제 정
직한 마음에 따르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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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1970년대는 참 재미있는 시대였다. 저런 엄청난 내용
을 당당히 감동적으로 그려낼 수 있었다니…….
마쯔모토 레이지 자신은 "인간을 보조하는 기계로서 거대 전투로봇은 그다
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전함, 전차, 해적선 등 여러 가지 매력적인 도
구가 있지 않은가? 굳이 기계에 인간처럼 눈이나 코를 달 필요는 없다"면
서, 거대 로봇물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보였다.
그 때문에 토에이동화 측에서 가져왔던 이 『혹성로보 당가드 A』의 기획에
참여하여 원작 만화책 (전 2권)도 그리고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원안도 맡아
주기는 했지만, 결국 그 이후에는 로봇물을 그리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아무튼 저 『당가드 A』 제 42화 「이성인 노엘의 미소」는 상당히 추천하
고 싶은 내용이다. 물론 『UFO로보 그렌다이저』의 제 25화 「하늘에 빛나
는 사랑의 꽃」도 꼭 한 번쯤은 봐야 할 내용이다. 『그레이트 마징가』의
제 1화에서 쯔루기 테쯔야와 호노오 쥰이 해변가를 뛰어다니며 쓰러지는 내
용만큼이나 재미있다.
옛날 로봇 애니메이션에는 꼭 저런 내용이 하나씩은 들어 있어서 정말 즐거
웠는데, 요즘은 그런 로망이 사라진 듯 하여 아쉬울 따름이다. 1970년대
센스를 되살리는 로봇 애니메이션의 왕도[王道]를 다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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