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72 선정우 mirugi 10-04 326 신일숙님 인터뷰 및 각종 기사문 모음.. 22K
#4572 선정우 (mirugi )
신일숙님 인터뷰 및 각종 기사문 모음 <2> 10/04 11:05 500 line
≪신 일숙 선생님 잡지 기사 및 인터뷰 모음≫
F I L E # 02
transcribed by mirugi (95.07.11)
{*주 - 앞에서 이어지는 기사...}
#만화의 소재는 주로 어디서 얻나요?
- 꿈, 즉 보고 들은 모든 것과 상상력에서 얻습니다.
#그렇다면 『리니지』도 꿈에서 얻은 건지요.
- 네, 꿈에서 만화책을 읽었는데 제목이 '데포로쥬 왕자'였죠. 꿈을
깨고 나니 내 것이 됐습니다.
#만화가 지망생들이 그 말을 들으면 상당히 황당(?)할 것 같은데요. 소
재를 얻기 위해서라도 부지런히 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하루에 잠은
몇시간쯤?
- 잘 잠 다자고 언제 만화 그라나요? 그저∼ 8시간쯤(?) 자고 있습니
다.
#아니 그렇게 많은 잠을? 그러면 『리니지』 1회분 하는데 시간은 얼마
나 걸리는지요?
- 콘티 짜는데 3∼4일, 그리는데 약 6일. 합해서 9∼10일 (컨디션이
좋을 때 이야기) 가량 걸려요.
#제목을 『리니지』로 한 이유가 있는지요?
- 당연히 '혈통'과 관계있는 이야기니까, 혈통이란 말이 어감이 안좋
아 영어로 쓴 것이 바로『리니지』죠.
#주인공들의 이름은 어떻게 정했나요?
- 데포로쥬는 꿈에서 본 그대로이고 정숙한 가드리아도 꿈에서―나머지
는 나올 때마다 지어냈죠. (가장 어울리는 이름으로―) 괜찮았나요?
#반왕을 마녀가 '아스테어'라고 부르는 이유를 모르는 독자도 많던데요?
- 본명입니다. 아리아드 켄 라우헬... 그는 비밀이 많은 사람이죠.
그 비밀은 『리니지』를 계속 보면 차차 밝혀질 것이예요.
#반왕은 나쁜 사람인데 왜 멋있게 그리지요?
- 반왕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상황이 나빠서 그렇게 된 것뿐입니다.
알고보면 그도 멋있는 사람이예요.
#주인공들의 얼굴이 자꾸 길어지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건지요?
- 작가의 얼굴이 자꾸 동그래지고 있어서 그에 대한 반작용일까요? 하
여간 자연히 짧아지기도 하겠지요. 기다려 보세요. 노력하고 있으
니...
#얼굴은 그렇다치고 눈빛이 너무 무섭습니다.
- ...무서워요? 어디가? 독을 쓰고 있을 때야 당연히 무서워야 하는
거고... 평소의 눈빛도 무서운가요? (작가는 도저히 모르겠음.)
#『리니지』의 나레이션은 누가 하는 말인지요? 작가? 아니면 제 3자?
- 일종의 중세 음유시인이 재미있는 얘기를 애들에게 해주는 형식을 택
했죠.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일러주는 대사 정도로 생각해 주세요.
#『리니지』에 등장하는 의상이나 성 등은 무엇을 근거로 그리나요?
- 동아출판사에서 나오는 빨간책 시리즈와 내가 구할 수 있는 모든 서
적, 그리고 상상력.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사건을 그린 시대이므
로) 『리니지』는 14∼15C 중반쯤의 의상과 기타 여러가지를 참고로 하
고 있죠. 단, 성은 그럴듯한 성을 모델로 하고 있어요. 진짜 그 시대
의 성은 보잘 것 없었기 때문이죠.
#그러면 『리지니』를 하면서 내용상으로 참고한 책이 있습니까?
- '햄릿', '반지전쟁', '왕자의 비밀' 등을 읽긴 했지만 정확히 참고
한 책이라 말하기는 힘들어요. 읽어보면 알겠지만...
#배경이나 명암 처리가 사실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직접 그리
는지?
- 큰 것, 진짜 사실적인 것은 모두 직접해요. 남이 손댄 것은 아무래
도 내 맘에 차지 못해서.
#『아르미안의 네딸들』에 이어 『리니지』도 굉장한 대작 같은데 줄거
리는 그때 그때 생각해요 아니면 이미다 생각해 놓은 내용인지요?
- 물론 기본 줄거리, 중요장면, 포인트 등은 끝까지 구상이 되어 있
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역사물 (정확히 역사물은 아니지만)은 못
해요.
#여태까지의 작품들을 보면 주로 시대물이 많은데 특별한 이유라도?
- ...특별한 이유? '좋아하니까', '관심있으니까', '그런 꿈을 꿨으
니까'라고 말하고 싶네요.
#시대물을 하면 여러가지로 힘들텐데, 무엇이 가장 어려운가요?
- 자료부족... 자료부족... 자료부족. 손의 숫자부족... (문어발쯤
되어야 하지 않을까)
#현대물이나 학원물을 할 의향은 없나요?
- 현대물은 하기도 했고 (『카르마』란 작품은 분명 현대물.) 앞으로
하게도 될 것이고, 학원물은 그런 내용의 꿈을 꾸게 되면 할게요.
#만화는 몇살때부터 그리기 시작했는지요?
- 그림으로 말하면 6살 때부터. 만화형식으로는 아마 국민학교 때부
터? 다만 펜터치를 가미한 것은 고교 졸업 후부터 정식으로 했습니다.
#원래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나보죠?
-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 만화 실력은 선천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가요?
- 글쎄. 만화실력보다는 만화를 열심히 그리려고 노력하는 기질이 선
천적이라고 해야 정답일 것 같네요.
#만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결정적인 동기는 무엇이었습니까?
- 상업 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취업이 되어있었는데 한 1년 반쯤 다니
고 나니 회사가 도산했어요. (사실은 정한수 떠놓고 망하길 빌었음?)
취직 자리가 없어져 놀게 되니 진짜로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었죠.
#순정만화 작가들에게 물어보면 『아르미안의 네딸들』을 읽고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들 하는데 본인은 누구의 영향을 많이 받았나요?
- 아마도 내가 읽고 본 만화, 영화, 기타 여러 곳에서. 어떤 특정한
영향을 받은 사람은 없어요. 만화가란 싫든 좋든 서로 영향을 주고 받
는 게 아닌가요? (다만 기본적으로 나만이 풍길 수 있는 분위기까지 바
뀐다면 문제는 틀리지만.)
#그리스 신화나 정령, 마법사등이 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특별한 이유라
도 있습니까?
-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곳에 적당한 것을 넣었을뿐. 흥미있으니까
그렇기도 하겠죠?
#가장 아끼는 주인공은?
- 없어요. 언제든 죽일 각오가 되어 있다구요.
#그렇게 심한 말을∼ 모 잡지에 연재하던 『에시리쟈르』를 그만둔 이
유를 궁금해 하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 원고료 문제, 원고 분실 사건, 끊임없는 오자 등등의 문제가 많았
죠. 독자와의 약속을 생각해서 끝까지 하고 싶었지만 너무 힘들었습니
다. 뒤에는 터무니없는 비난까지 받아 많이 속상했었죠.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하겠습니까?
- 당연! 가장 재미있는데서 중단되었으니 반드시 끝을 내야죠. (시간
은 좀 더 걸리겠지만...) 뒤가 더 재미있는데...
#『아르미안의 네딸들』 29권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일설에의하면
그것 기다리느라 목이 빠진(?) 독자가 많다는데...
- ......조금씩 하고 있다는 변명만 할 수 있을뿐. 끝내기 전엔 절대
안 죽겠습니다. (이상은 리니지의 재미에 빠져 잠시 아르미안을 잊고
있었던 작가의 변명이었습니다.)
#만화관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 20년후에도 재미있다는 소리를 듣는 만화를 그리는 것입니다.
#학교 때 성적은 어땠나요?
- 중학교 때는 중상쯤? 잘하는 과목과 못하는 과목의 차가 심했죠.
(특히 국어를 못했다.) 고등학교 때는 상업학교라 비슷한 실력의 학생
들이 모여있어 그야말로 조금만 노력하면 상, 안하면 하―요행히 중―
이런 정도.
#세계사 공부는 열심히 했을 것 같은데요?
- 아무래도 좋아하니까 머리에 쏙쏙. 만화를 하면서 더 좋아하게 됐
죠.
#현재 문하생은 몇명입니까?
- 3명의 아리따운 아가씨들. 김종분, 김은영, 임종녀.
#문하생을 뽑는 기준이 있다면요?
- 첫째 재능, 둘째 순종심(?), 셋째 근성, 넷째 끈기, 다섯째는 선
생과 맞아야겠죠.
#만화가 잘 안될때 강아지 코코를 집적(?)거린다는데 사실인가요?
- 사실이예요. 코코 뿐만아니라 크리스 (고양이)랑 놀리도 하고 커피
를 마시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비디오를 보거나 옆에 앉은 누군가를 놀리
거나 전화를 걸거나 그래도 안되면 잡니다. (마감땐 그런 게 어딨나요?
무조건 해야지!!)
#만화말고 관심있는 분야는 뭐가 있을까요?
- ...손으로 하는 건 다 좋아해요. 하지만 만화를 위해 극히 자제하고
있는 중이죠.
#첫사랑은 언제 했는지 살짝 밝혀보시죠.
- 그 사람은 딴 여자를 좋아하고 있었죠. 그 여자를 위해 학교까지 자
퇴하고 연극의 길로 들어선∼ ∼테리우스∼!! (속보인다.) 누구 놀리
는 건가요? 아무도 없었답니다.
#그럼 이상형이라도 얘기해주세요.
- 밥 잘하고 반찬 잘 만들고 마누라 보길 하늘같이 하는 남자. 아니면
20년만에 한번씩 돌아오는 배를 타는 잘생기고 몸매좋고 인간성도 좋은
마도로스. (알았어요, 꿈 깰게요.)
#그런 남자 만나 결혼하려면 1백년 이상 걸리겠네요. 과연 국수는 언제
쯤 먹을 수 있을까요?
- 이상형만 만난다면 언제라도. 하지만 나 혼자 몸도 힘든데 누구를
책임질 수 있을지.
#하루에 누굴 제일 많이 생각하나요?
- 김영삼 대통령. (찍어 줬으니 표 값 하나 보느라고.)
#돈을 많이 벌었다는 소문이 들리는데 재산 공개를 부탁합니다.
- 『아르미안의 네딸들』 1∼28권, 『1999년생』 전 3권, 『카르마』
전 2권, 『에시리쟈르』 1∼11회분 (그나마 한 회분은 분실.), 『사랑
의 아테네』 전 4권, 『라이언의 왕녀』 전 4권, 단편 총총... 현재
『리니지』 비축중. 돈 벌려고 만화 그린 것 아니고 늦게 그리니 번 돈
도 다 나가고... 작가에게 작품만한 재산이 어디 있겠습니까? 비록,
전세집이지만 지붕있고 벽있는 집에서 작품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지방 (부산)에 있어 불편하기도 할텐데 어떤 면이 많이 불편한가요?
- 시외전화비가 엄청 나오고 원고 붙이는데 소요경비가 좀 들고 팩스
보낼 때마다 돈∼ 돈∼. 친한 작가들 한번 보고 싶어도 거리상 그렇고
∼.
#서울로 이사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 작가 생활 하면서 지방에 있어 불편한 점이 많지만 아주 가서 살 생
각은 없고 가능하면 서울에 화실을 하나 낼까 생각중이에요.
#팬레터는 몇통쯤 받나요?
- 1∼30통. 일요일에는 안오던데요?
#기억에 남는 팬레터를 얘기해 주세요.
- 얼마전 '한권의 책'을 소개하면서 '제인에어', '40전 성공비결',
'성공의 문은 열리다', '탈무드', '일리아드', '오딧세이' 등을 읽엇
다고 했더니 책 좀 빌려달라고 편지가 왔어요. 너무 의외라 좀 당황.
편지하신 분, 미안하지만 그 책은 내 책이 아니라 아버지 책이라 안되
겠습니다. (책이 한권이라도 없어지면 곤란한 일이 생김.)
#만화가가 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나요?
- 아직은 없습니다.
#1주일쯤 자유가 주어진다면 뭘 하고 싶습니까?
- 난 항상 자유입니다. 나하고 싶은 일 하는게 자유 아닌가요?
#자기 작품에 성적을 매긴다면 (수우미양가) 어느 정도일까요?
- 우. 하고 있는 상태로 봐서 평균 이 정도 성적은 되지 않을까요.
수를 받기 위해 더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네요.
- 신일숙의 또다른 면을 보여줄만한 작품에 도전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윙크 독자에게 한마디 부탁합니다.
- 여러분이 투자한 2천 5백원은 미래의 더욱 재미있는 작품을 보기위한
투자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순정만화 보고 빗나간 독자 있으면 신고하세
요. (윙크로∼) 늘 감사합니다.
■윙크 '독자 데이트' : 94년 5월 15일자
《인기 최고의 작가와 관심 최고의 독자가 함께한 싱그러운 데이트》
{*주 - 필요없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생략했습니다.}
#『아르미안』 29권은 언제쯤 볼 수 있는 걸까요.
- 머릿속엔 늘 작품을 구상하면서도 잘 안돼. 지금은 리니지의 재미에
푹 빠져있는데다 원래 작업 스타일이 여러가지를 동시에 하질 않거든.
나도 되도록 빨리 내고 싶은데... 노력은 하고 있으니 너무 섭섭해하지
마시길.
#선생님 작품을 보면 그림도 너무 예쁘고 스토리도 재미있어서 너무 좋
아요. 그런데 때로 야하다 싶은 장면도 있더라구요. 『A4』에서도 그렇
고, 어떤 잡지 창간호에도 야한 작품이 실렸더라구요.
- 내가 원래 야하잖아. (일동 웃음)
#예예? 미처 몰랐는 걸요. 그런데 『리니지』의 주인공 데포로쥬는 다
른 캐릭터보다 안 야하고 덜 이쁜 것 같아요.
- 이거 큰일났는걸. 그런데다 머리까지 잘랐으니... 머리카락이 자랄
려면 1년이란 세월은 흘러야 할텐데.
#질리언과 오웬은 서로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아요. 오웬을 좋아하는
독자들도 꽤 있는 것 같은데 오웬쪽에 더 비중을 두시나요?
#어? 둘은 같은 인물인데... 질리언이 오웬이잖아!
#몰랐어? 그 둘은 보름만에 나타나잖아. 질리언은 남자로, 오웬은 여
자로...
#별개인줄 알았는데, 창피해. 난 몰랐어. 완전히 별개인 줄 알았는
데.
- 너무 창피해 하지마. 둘다 자기 성[性]인 채로 각기 존재한다고 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만화를 볼때 느끼는 건데요, 내가 좋아하는 주인공이 죽으면
너무 가슴이 아파요. 『A4』에서 스와르다의 죽음도 그렇고, 『리니지
』에서도 그렇구요. 꼭 죽여야만 했을까요? 착한 사람은 때론 살려주
시지...
- 괜찮아. 대신 죽음으로써 좋은 이미지가 오래 남을 수 있잖아?
#그래두요.
- 아니야, 만화 스토리란 게 그렇고, 인생이 그런 거 아니겠어? 죽
는 사람도 있고, 사는 사람도 있고... 선인과 악인이 공존하는 것처
럼.
#그런데 『A4』를 대본소용으로 말고 다시 고급 장정으로 내실 계획은
없으세요?
- 아이구! 또 『A4』 얘기구만. 자꾸 미안해지게 만드네. 완성 못한
죄가 워낙 커서... 물론 그러고 싶지만, 그것도 작품이 다 완결된 후
에나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리니지』는 전체 분량이 어느 정도 되는데요?
- 음... 그것 역시 작품이 끝나야 정확한 얘기를 할 수 있겠지만 단행
본 (윙크 북스)으로 대략 6∼7권쯤? 지금은 데포로쥬가 다섯 기사를 만
나는 과정이고, 그 다음은 반왕편으로 이어질 예정인데 작품 전체의 아
웃라인은 나와 있지만 글쎄, 해봐야 알겠지. 잡지는 단행본하고 틀려
서 감정을 더 끌어가야 하는 부분에서 그 회로 끝내야 할 때가 있어,
아쉬움이 남기도 하죠. 그런 면에서 분량은 거의 의식하지 않고 작품성
에만 치중하고 싶어요.
#그런데 작품을 하다 보면 실제 있었던 일을 그리는 경우도 더러 있을텐
데, 선생님의 경험을 바탕으로 학원물을 해보실 의향은 없으세요?
- 학원물엔 왠지 손이 가지 않아요. 아마 작가 취향이겠지만.
#그런데 시대물을 하실 때 의상 같은 건 어떻게 그리시나요? 『A4』나
『리니지』에서...
- 주로 중세때의 의상을 참고로 하지. 관련 서적들을 많이 보는데,
그대로 인용할 수는 없고 약간씩 변형을 해요.
#선생님 작품에선 선 하나, 톤 하나에도 정성이 듬뿍 담겨 있는 것 같
아요. 1회 분량의 원고를 그리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 스토리 짜는데 3∼4일, 원고 작업 5일 정도. 1회에 보통 열흘 가까
운 시간이 걸리죠.
#톤 작업도 직접 다 하시나요?
- 물론. 가능한 한 그럴려고 해.
#문하생은 몇명이나 있으신가요?
- 4명 정도. 팀웍도 좋고 다들 열심히 해요.
#캐릭터의 이름은 어떻게 지으세요?
- 우선 어감이 좋아야지. 특별한 방법은 없어요.
#『에시리쟈르』는 언제쯤 완결을 볼 수 있을까요?
- 출판사 사정으로 본의아니게 작품이 중단됐는데... 마무리 해야죠.
작가로서도 작품이 완성되지 못하면 참 안타까워. 『리니지』가 끝나면
언제고 다시 완성할게요, 여러분―.
#부산에서 서울로 원고를 보내려면 불편하실 것 같은데 원고는 우편으로
보내시나요?
- 그런 편인데 급할 때는 비행기 편으로 보내기도 해. 그러면 출판사
에서는 공항으로 가 찾지. 때론 인편으로 보내기도 하고.
#아예 서울로 화실을 옮기실 생각은 없으세요?
- 난 부산이 좋아. 고향이나 마찬가지고 바다도 있고... 그래도 부산
독자들은 "선생님, 절대 이사 가시면 안돼요."하는 경우가 많은걸.
#윙크에 선생님 사진이 자주 나오곤 했는데 얼굴이 알려져 불편했던 적
은 없으세요?
- 한번은 영화를 보러 갔는데... 내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서
당황한 적도 있지. 사인해달라는 건 보통이고 짓궂은 독자들도 있습니
다.
#『A4』를 보면 '미래는 언제나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갖
는다.'라는 문구가 자주 나오는데 너무 좋아서 메모해 놓는 친구들도 있
었어요. 원래 글솜씨가 좋으신가 봐요.
- 아냐, 그런 건 아니고 그저 '경험'이라고 생각해. 내 생활, 철학
의 일부분이고.
#『나의 이브』 같은 작품에선 종교적인 소재에 약간 어긋나는 내용이라
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반발도 없지 않았으리라 싶은데...
- 독자들은 간혹 '선생님의 이미지가 아닌 것 같아 뜻밖이다. 실망했
다.'고 하는 경우도 있답니다. 야하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도 있고
말야. 하지만 만화는 어디까지나 만화라고 생각해야 된다고 봐. 그리
고 내 이미지는 '이거야'하고 정해 놓은 것도 없고. 만화가 종교와 병
립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가장 자유로워야 하는 게 만화가 아닐까요?
#선생님 첫사랑 같은 거 물어봐도 돼요?
- 나? 테리우스지 뭐. 만화속에서나 경험해봤다고 하면... 대답이
될까?
#선생님이 보신 작품중 감명깊은 만화라면요?
- 좋아하는 작가는 따로 없고 여러 작가의 가장 잘됐다는 작품을 좋아
하는 편이지. 만화는 작품을 보고 선택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만화를 해오시면서 고생도 많으셨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만화가가
되고 싶어하는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 만화가란 일정 단계에 오르기까지는 매우 배고픈 직업이지. '돈없어
도 그린다!'라는 결연한 의지가 있어야 될 것 같아요. 고행의 길이고
결국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하는 거야. 만화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 아
직은 부족한 게 현실이어서 외롭지만 열심히 해야 할 거야.
#요즘의 순정만화는 인간적인 순정만화, 순정 속의 SF등 장르가 다양해
진 편이라 생각해요. 선생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 물론 그렇지. 하지만 더 많은 세계, 더 넓은 우주로 뻗어가기 위해
선 난 신인들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싶어요. 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거든. 또 아울러 독자들의 만화를 보는 '입맛'도 다양해져야겠고.
#『라이언의 왕녀』로 데뷔해서 만화에 몸담은 지도 꽤 됐는데 결혼은
언제쯤 하실...? 잘 생긴 남자만 그려서 눈이 높아지겠어요.
- 잘생기고 못생기고가 문제가 아니라 잘생겼다 해도 성격이 문제겠지.
일과 결혼이 불가분의 관계이고 보니 내 입장에선 아직은 일이 더 좋아
요.
#주인공 말고 조연중에도 참 멋있는 캐릭터가 많은 것 같아요. 그야말
로 빛나는 조연이죠. 선생님을 닮은 캐릭터를 그리시기도 하나요?
- 아마 요소요소에 이미 들어갔을 거예요. 어차피내 사고와 경험에서
우러나는 거... 캐릭터가 나를 닮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그렇겠군요. 그리고 기억에 남는 팬이 있다면...
- 많지. 마감하느라 눈코뜰 새 없이 바쁠 때 들이닥치는 팬, 비몽사
몽일때 전화해서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하는 팬, 짓궂은 편지 등
등.
#선생님이 그만큼 관심의 대상이라는 반증이네요. 그렇죠? 문하생을
뽑는 기준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이 자리를 빌어 한마디 해주세요.
- 우선 그 사람의 재능을 보고, 나와 다른 친구들과 호흡을 잘 맞출
수 있을까를봐.
#남자 문하생은 안 뽑나요?
- 대체로 남자 문하생은 순정만화쪽의 재능에 못미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별로...
#끝으로 선생님의 작가 철학을 듣고 싶어요.
- 오래 남는 작품, 시대가 바뀌어도 꾸준히 사랑받는 작품을 하는 것
이예요. 그러기 위해선 우선 내 자신 끊임없이 노력할 겁니다. 독자여
러분의 아낌없는 성원과 질책 바랄게요.
■윙크 '작가 릴레이 에세이/나의 데뷔' : 95년 1월 1일자
《정말 죽고 싶을만큼 부끄러웠던 기억》
어렸을 때부터 주욱 만화를 좋아하긴 했으나, 현실적인 직업으로 만화
가를 선택하기까지는 꽤나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것도 부
산의 상업고등학교를 다니던 내게는... 졸업도 하기 전 이미 취업해 다
니고 있던 회사가 이듬해 가을 갑자기 도산을 하게 되자 나는 갑작스런
자유를 누리게 되었고 (회사엔 미안한 얘기지만.) '이제는 내가 정말 하
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서울 고모댁의 식객 노릇을 하게
되었다.
그후, 혼자서 열심히 작업한 한권 분의 원고를 들고 과감히 출판사로
찾아갔으나, 멋지게 딱지 맞았다. "데생은 좋은데, 터치에서 영..."
친절한 충고에 따라 다시 한권 분의 원고를 해서 또 찾아갔는데 두번째
거절을 당하자, 뭔가 심각한 결점이 있다는 건 알겠는데, 도저히 혼자
서는 나아질 것 같지가 않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드디어 기성작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가게 되었으나, 먹칠부터 차
례로 배우리라는 기대에도 불구하고 막상 스토리와 데생이 첫일로 맡겨
져 그 꿈(?)은 처음부터 어긋나고 있었다. 2년쯤 그 일을 하면서 고민
을 계속했다. '스토리와 데생이 내 것이면, 이건 결국 내 작품이 아닌
가?' 나의 이당돌한 고민은 아마도 그 당시 구세대와 신세대의 관념차
이겠지만, 내게는 어떤 용납치 못할 선[線]과도 같은 것이라, 결국,
그 선생님의 문하를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운좋게도 『라이언의 왕녀』란 제목의 작품 (여전히 같은 결점
을 가지고 있었으나, 단지 눈속임의 요령만이 는 작품이었다.)으로 프
린스사에서 데뷔하게 되었고, 그저 원고가 팔렸다는 이유만으로 제법
자만심에 차 있었던 나는 금의환향이나 하는 기분으로 부산으로 내려가
기로 했다.
그런데 그 직전, 같은 출판사에서 나오고 았는 『북해의 별』의 원고를
봄으로써 나의 그 엉터리 자만심에 찬물을 끼얹는 벼락같은 충격을 맞게
되었다. ...그때의 충격이란... 무어라 말해야 할까? '어떻게 인간의
손으로 이렇게까지 그릴 수 있나!?' 그때까지 정말로 만화에 문외한이
었던 나는, 다소 못그려도 인쇄로 적당히 커버되는 줄만 알았는데...
실은 원고가 인쇄보다 몇 배는 더 낫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
고... 그때부터 사흘 간, 걸어다닐 때도, 밥먹을 때도, 앉아 있을
때도, 잘 때조차도, 하여간 한시도 그 영상은 눈 앞을 떠나지 않았다.
부산에 내려와서 작가인 김혜린씨를 직접 만나보고 나서야 그 사람도 사
람이란 것을 알고 안심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또 다시 더블 펀치는... 그놈의 인쇄의 법칙이 내 것에도 적용
된다는 아주아주 당연한 사실이 사실로서 눈앞에 나타났을 때였다. 더
구나, 우리집이 총판과 가까웠기에 그때 마침 놀러와 있던 김혜린씨와
같이 막나온 『라이언의 왕녀』를 보게 되었기에... 나는 그날 정말 죽
고 싶을만큼 부끄러웠다. (만약 사람이 너무나 부끄러워서 죽을 수만
있다면, 아마 나는 그날 죽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안이한 데뷔는 처참하고, 뼈저린 교훈을 안겨주었고,
그때 나는 깊이깊이 반성했다. 빨리 그려서, 빨리 책을 내고, 빨리
돈을 벌고 싶었던, 그 '빨리빨리'란 욕심을 버려야겠다는...
남에게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 안 된다면, 적어도 부끄럽지 않으려 노력
하는 작품만은 그려야겠다는 결심으로 처음부터 천천히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연습작으로 H.R에서 선택한 『사랑의 아테네』를 권당 석달반씩 걸려 1
년만에 전권을 완성했고, 그제서야 터치에 약간의 자신감을 갖게 되었
다.
아마도 나의 진정한 데뷔작은 『아르미안의 네딸들』이라고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 자신을 가지고 줏대있게 시작한 작품이므로...
심의 때문에 아주 과감한 표현은 할 수 없었으나, 애초 생각했던 기본
루트를 많이 벗어나지도 않고, 내 자신의 장단점을 가장 솔직히 내보인
『A4』는... 사실 내숭으로 아닌 척 했으나, 역시 내게는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A4』를 열 권쯤 냈을 때, 진짜
잊지못할 명구를 적은 팬레터를 받았다.
'다른 이들은 신일숙씨를 정말 그림 잘그린다고 얘기할지도 모르지만,
알고 계십니까? 신일숙 선생님의 가장 큰 매력은 진짜 노력하는 그림을
그리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독자들의 대다수가 정말로 만화를 보는 눈이 없다는 것은 만
화가 생활을 하면서 잘 느낄 수가 있었는데, 이만큼이나 작가를 읽어낸
몇몇의 독자들이 진정 내게 감동과 기쁨을 주곤 한다.
사실, 그말 그대로 나는 아주 빼어난 감각을 선천적으로 가진 작가도
아니며, 만화가에 적합치 않은 몇가지의 결점조차 가지고 있을지도 모
른다. 그러나, 만화가 생활을 그만두는 순간까지, 늘 데뷔 당시의 마
음가짐으로 노력을 하는 작가로서 독자들과 후배들의 기억에 남았으
면... 그것이 최후까지 남을 나의 욕심일 것이다.
■WHITE '작가 후기' : 95년 6월호
신일숙/크리슈티 - "언젠가 성인지가 나오면 꼭 크리슈티를 하리라 생각
했었다. 구상때는 사실 전 칼라 작품으로 구상했었지만 역시 현실의 사
정은 틀린 법이니까... 하는 동안 너무 행복했다. 오랫동안 하고 싶은
작품이기도 했지만 뭣보다 심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좀 더
야한 작품을 해보고 싶은 건 작가의 야한 마음일까?"
■WHITE '화제작 퍼레이드' : 95년 7월호
<전략>
이 작품을 처음 시작할 당시 작가 신일숙은 여성해방운동에 지대한 관심
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그녀의 관심은 자연히 작품속에 반영되게 되
었고, 여성들이 역사를 주도하고 주된 활동을 보이는 작품을 하겠다는
그녀의 의도는 『아르미안의 네딸들』을 낳았다.
처음 그녀의 의도대로라면 오늘날의 이 '신화'는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소규모의 부족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루려고 생각하고 시작한 작
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점 작품이 전개되면서 역사와 사건에 어긋
나지 않게 하려는 작가의 세심한 배려와 완벽을 추구하는 철저한 프로근
성이 이야기의 영역을 점차 확대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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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것은 어언 석달전...;; 그런데 왜 지금 올리게 되었는가
그 이유를 말한다면, 원래는 게시판에 올리려고 쓴 글이 아니라 어딘가
에서 조사를 맡게 되어 쓴 것이었기 때문이어서 그 일이 끝난 이후에 올
리려던 것이었는데, 한 보름전쯤부터 자꾸 잊어버려서... ^^ 단지 그
이유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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