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7 선정우 (mirugi )
[의견] 셰익스피어는 왕자였던가? 10/16 11:14 90 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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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에 대해서는 그렇게 자세히는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혹시
정말로 왕자였을지도 모르겠군요. ^^
하지만, 소설이나 영화 등…. 기타 장르의 많은 예술작품속에서도, '자
살'이라든가 '살인'이 많이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작가들이 과연 '자살' 경험이 있는 것이겠습니까, 아니겠
습니까. (살인 경험은 있을 수도 있겠지만.)
헤밍웨이는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 경험을 살려서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만이 명작이고, 왕자였던 경험이나 자살 경험이 없는 셰
익스피어가 쓴 『햄릿』이나『로미오와 줄리엣』은 명작이 아니어야만 한
다는 것입니까?
이건 극단적인 예를 들어본 것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작가 자신의 경험이
그가 창조해낸 작품의 작품성을 결정하는 하나의 요소는 될 수 있겠지만,
'절대적' 요소는 될 수 없다는 것이 저의 일관된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두 주인공이 자살한다고 하여, 자살
자의 심리를 경험을 통해 작가가 알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거야 애초에 자살을 그리려는 작품이 아니고 단지 내용 중에 자살
이 필요해서 등장시킨 것일뿐이니까 상관 없다고 칠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럼 만약 연애소설을 쓰려면 꼭 연애를 해봐야 하는 것이고 못
해본 사람은 못 쓴다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
덕』은 명작이 아니라는 말이 되겠군요.
'왜' 경험이 없으면 좋은 작품이 못나오는 것입니까? 어디 법에 그렇게
적혀있기라도 한가요. 우연히 쓰다보니까, 실제 경험하지도 않았는데 정
말 경험한 사람보다도 잘 표현될 수도 있는 것이겠고, 아니 그렇지 않다
해도 '비경험자가 본 관점에서의 작품'으로서 가치를 가질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꼭 묘사가 완벽하게 사실적이어야만 명작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죠.
동성애 작품이 독자에게 '동성애를 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동성
애에 대한 정당성이나 설득력을 나타낼 필요는 하나도 없는 것이 아닙니
까. 이성애에 대한 작품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작가의 생각을 나름대로
표출하면 그만일 겁니다. 그런 와중에서 좋은 작품이 나오면 나오는 것이
고, 별로 재미없는 작품이 나오면 할 수 없는 것이죠.
요는, 읽어봐서 그 작품에 대한 평가를 해야지, 작가가 그걸 경험했는지
안했는지는 따져봐야 소용없다고 생각됩니다. 작가랑 만나서 물어본 것도
아니고, 혹시 자기는 못 해봤어도 그 작가 남동생이 동성애자였다던가,
그런지 어떤지 독자들은 알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기본적으로는.) (혹
시 정말 작가한테 찾아가서 물어본 독자라면 알 수도 있겠지만.)
알 수 없는 것에 신경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화가 경험이 아닌 공상을 바탕으로 두었을 때 그만큼 감동도 적어질 수
밖에 없다? 왜 그렇죠? 전 그 이유를 전혀 모르겠군요. 『열왕대전기』
식의 사랑은 현실에서는 절대로 없다고 단언하셨는데….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아십니까?
……그러니까 결국, '실제'와 '작품속 현실'은 전혀 다른 겁니다.
'작품속 현실'도 기본적으로는 '실제의 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
겠지만, 거기에 '작가적 상상'을 보태서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결국 아무
리 리얼리즘을 추구해봤자 실제와는 다를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만든다고 해도, 이미 '언어' 혹은 '그림'으로서 표
현됨으로써, 그 실제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또는 그 현실을 왜곡시키
는 것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아예, 경험은 무시해버리고 완벽하게 상상력으로만 만들어낸다
고 해도, 그것이 '절대로' 명작이 될 수 없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
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특히나 동성애 만화의 경우, 이 동성애자라는 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해서, 뭐 그걸 꼭 캠페인식으로 '동성애자의 권리를 인정하라!'고
외쳐야 하고, 뭐 실제 동성애자랑 면담을 하면서 그 실상을 알아야 하고,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간혹 계시던데, 아니 그렇다면 장애자 만화를 그
리면 꼭 무슨 시각장애자가 마라톤 우승하고 그런 만화만 그려야 하는 겁
니까?
그냥 단순히 주인공이 장애자인데, 장애자인 것은 아무 상관없고 그냥 SF
만화를 그릴 수도 있는 것이 아닙니까?
주인공이 동성애자이고, 동성애를 다룬 만화라고 해서, 그걸 뭐 꼭 AIDS
문제를 다루고, 동성애자 해방론을 펼치고, 꼭 그래야 하는 것인지 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만화도 물론 있으면 좋겠지만 (그리고 실제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만
화를 본 적이 별로 없기에 좀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냥
단순히 동성애가 등장할뿐인 만화라던가, 아니면 동성애를 자연스러운 것
으로 표현하는 만화라던가, 극단적으로는 동성애를 권유하는 만화라던가,
아니면 또 동성애 반대 만화라던가, 뭐든 제대로 만들기만 하면 명작인
것이지, 그 만화가 펼치는 '주장'이 마음에 안든다고 해서 그 작품까지
명작이 아닐 수는 없는 것이겠죠.
왜냐하면 이미 그 '주장'이 옳은가 아닌가 하는 문제도, 사람마다 제각각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일 거라 생각합니다.
어차피 그렇다면, 그 '주장'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왈가왈부할 것이 아니
라, 그 작품 자체만을 생각해서 비평하고 생각하는 것이 어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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