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5 선정우 (mirugi )
[의견] 작가의 경험 문제. 10/17 01:58 48 line
written by http://www.mirugi.com/
제가 말했던 관점이랑 같습니다만? 아래 광현님. 제가 말했던 것도 주로
감정과 심리에 해당되는 말이었습니다.
작가가 모든 감정과 심리를 전부 경험한 다음에 작품 을 만들어야만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느냐는 겁니다.
어차피 상황이 감정을 만드는 것인데, 그 작가가 그 상황에 빠져 보지 않
고서는 그 상황에 맞는 감정이 나올 수가 없겠지요.
그리고, SF라고 해도 말입니다. SF에서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안 나오
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물론 그 중에서는 SF적 배경과는 상관없을 감정,
즉 단순한 사랑, 질투, 우정 등의 감정도 있겠고, 그것은 작가 자신이
SF적 경험을 안 하고도 느낄 수 있는 것이겠지만, 예를 들어 아래에도 나
왔던 『별빛속에』에서의 시이라젠느의 경우라든가는 어떤가요.
그런 감정표현은, 뭐 대강 비슷한 경험이야 있을 수도 있겠지만 (혼자만
의 조난 체험이라든가.), 없을 가능성이 보통 높은 것 아니겠습니까. 또
아래 글에서 제가 말했던, '자살자의 심리'도 마찬가지겠고요.
살인자의 심리를 다룬 작품이라고 해도, 그 작가가 그런 작품 만들려고
꼭 살인을 해본다던가 살인자와 면담할 필요가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살
인에 대한 환상과 공상만으로 살인에 대한 작품을 만들었다고 해서, 그것
이 좋은 작품이 아니어야'만' 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지요.
물론 좋은 작품이 아닐 '수'는 있겠습니다만, 그건 작가가 자신이 경험한
심리와 감정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도 역시 마찬가지이겠지요.
작가가 경험한 심리나 감정을 바탕으로 한 작품도 좋은 작품일 수도, 나
쁜 작품일 수도 있고, 작가가 경험하지 못한 심리나 감정을 환상으로 꾸
며낸 작품이라도 좋은 작품일 수도 있고 나쁜 작품일 수도 있다면, 결국
어느쪽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제 생각은, 작품은 작품 자체만으로 평가 받아야지, 무슨 '장르'라던가,
또는 그런 식의 '뭉뚱그려서 판단'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합니
다.
즉, SF물은 다 싫다! 라던가, 한국 순정만화는 최고다! 라던가 하는 것
들 말입니다.
그때문에, '작가의 경험에 바탕을 두지 않은 작품은 다 나쁘다!'라는 것
에도 찬동하기 힘듭니다. 그건 단순한 경험주의일뿐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경험주의만이 옳은 사상인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작가가 신도 아니겠고, 어차피 무슨 경험에서 얻은 감정이나 심리
도 결국 불완전할텐데, 그 경험이 있는 상태에서의 작품도 나름대로 가치
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예 없을 때의 작품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을 수
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불완전한 감정 상태를 배제하고 완전한 공상의 산물인 감정 표현이란 것도
나름대로 재미있을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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