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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성계의 문장』과 『성계의 전기』.              관련자료:없음  [23711]
 보낸이:선정우  (mirugi  )  2000-10-13 06:31  조회:2

『성계의 문장』과 『성계의 전기』,  멋진 제목이긴 하지만  한국어……로
서는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긴 하죠.  아마 그래서 바꾼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언어의 변화를 더욱 중시하는 입장이라서,  게다가 어
차피 '星界'라는 말이 특별히 일본어인 것도 아닙니다.  어차피 한자로  된
조합어이므로 일본에서도 쓸 수 있는 말이겠지만 한국에서라도 못 쓸  이유
는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뒤의 '문장[紋章]'은 말할 것도 없이 한국어에서도 쓰이는 단어고,   '전기
[戰旗]' (전쟁의 깃발을 뜻하는 것이겠죠.  일본 제목에서 자주 쓰이는 '전
기[戰記]'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는 조금 특이한 단어이지만 이것 역시  애
초부터 일본어라고 하기는 힘든 것입니다.  그저 한자어일 뿐이죠.


따라서 결국 그냥 『성계의 문장』,  『성계의 전기』라고  했어도  그다지
어색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애초부터 '의[の]'라는  글자를
제목에 남용하는 일본어의 특징이 있기 때문에…….  영어 제목이 아닌  웬
만한 인기 만화나 소설의 제목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의[の]'
가 들어가는 것이 많습니다.  『불꽃의 미라쥬』,  『유리의 가면』,  『왕
가의 문장』,  『유리의 성』,  『모래의 성』,  『야가미군의 가정의 사정
』,  『아이노 쿠사비』,  『썩은 교사의 방정식』,  『방과후의 직원실』,
『끝없는 러브송』 (이라고 번역되지만 '終わりのないラブ·ソング'이므로)
등등…….

(……어째 뒤로 갈 수록 이상한 제목만 나온 것 같은 기분도…….  기분 탓
이겠죠? -_-)


게다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제목은 '의[の]'가 빠지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바람 골짜기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마녀의 택급편』,   『붉은 돼지』
(로 번역되지만 원어는 '紅の豚'이죠),  심지어 『모노노케 히메』에도  뜻
은 틀리지만 'の'가 들어가지 않습니까! ^^;;



아무튼 이처럼 일본의 작품들은 제목이 '의[の]'를 다용합니다.  이 중에는
동격의 '의'도 있고 뭐 여러 가지 의미가 있긴 하지만 어쨌든,  그걸  전부
'의'로 일일히 한국어로 단순 치환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기도 하죠.   전통
적인 한국어에서는 '의'를 그다지 다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계의 문장』이나 『성계의 전기』가 그다지 한국어로도  이상할
것까지는 없다고는 해도,  일단 일반인들이 느끼기에는 일본식이라거나  적
어도 한국식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기 쉬울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일반
대중을 무시하는 (실제로 무시받을 요소도 충분히 있다고는  생각합니다만)
출판계의 경향으로 보아,  같은 작품이 전편과 속편에 따로따로 제목을  갖
고 있다는 사실,  그 제목 자체도 자칫 생경하게 느껴질 수 있는  '성계'가
어쩌고 '전기'가 어쩌고 하는 이상한 것이라는 점 등에서 이것을  단순화시
켜 『은하 전기』라고 뭉뚱그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언어란 변화하는 것이라는 시점에서는 이런  '한국어적인 순화'만이
꼭 좋은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의'의 다용을 억제한다던가 아예  일본
어적인 특성인 것을 가능한 한 줄여야 하겠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만,   또
너무 지나치게 별로 일본어적이라고도 할 수 없는 단어까지 없애겠다면……
조금 과민 반응 아닐까 싶거든요.

그러려면 아예 '수학'이라든가 '함수'라든가 '경제'라든가  '공산주의'라든
가 하는,  일본에서 건너온 한자어 전부를 다 없애자는 운동이라도  펼치자
면 조금 이해가 가겠습니다만.  다 없애지도 못할 거면서 구태여 과민 반응
을 보일 필요가 있을지…….


물론 '이미 들어와서 널리 퍼져버린 단어는 어쩔 수 없겠고 앞으로라도  잘
하자'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_-




아무튼 이 글의 결론은!  『성계의 문장』을 그 제목 그대로 냈어도 상관은
없지 않을까 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저걸 『은하 전기』란 제목으로  바
꾼 것은 굳이 일본어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만이 아니라,  『성계의 문장
』이란 식의 제목이 '무식한' 독자들에겐 지나치게 어려울 듯 싶으니 잘 팔
리려면 좀 더 쉬운 제목을! 이란 생각으로 만들어졌다고도 생각되므로 어느
정도는 수긍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뭐 어차피 나야 원판 소설을 읽으면 되
니까 별로 상관은 없기도 하고……. -_-)


(독자들이 무식하다는 데에 수긍하는 것은 아니고,  보다 쉬운 제목으로 내
는 편이 낫다는 데에 동의한다는 이야기.  사실 그리고 무식하지야  않더라
도 한국의 독자들이 일본에 비해 이런 식의 SF나 팬터지 쪽의 지식이  전반
적으로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죠.  물론 골수 팬들의 레벨로는 동격 혹은 더
뛰어날지도 모르지만,  '모든 소설 독자들의 SF or Fantasy 이해도 평균'에
있어서는 일본에 비해 떨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더라도 레벨이 낮으니까 자꾸 독자들 레벨에 맞춰가자고만  생각
한다면 발전이 없는 것이죠.  출판사 측에서 제목부터 생경한 『성계의  문
장』이라던가 하는 것을 자꾸 써줘서 그걸 독자들이 익숙하게 생각할 수 있
도록,  즉 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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