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소녀혁명 우테나』―그 현실과 허상 속의 劇― 1/2 관련자료:없음 [4403]
보낸이:선정우 (mirugi ) 2000-10-28 23:30 조회:1
다음은 필자가 월간 게임잡지 「GAME LINE」 1998년 3월호에 게재했던 기사
를 약간의 수정을 거쳐 옮긴 것이다.
기사를 쓴지 오랜 시간이 흐른 관계로 생각이 바뀐 부분도 있고 글 자체도
전반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 많다. 하지만 이런 옛날 글도 나름대로
역사적인(?)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여 가능한 한 원문의 주요 부분은 그대
로 놔 두었지만 어쩔 수 없이 첨삭한 부분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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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絶·對·進·化·革·命·前·夜 §
『소녀혁명 우테나』―그 현실과 허상 속의 劇―
§1§
written by http://miru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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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TV에서도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1990년대 최대의 히트 애니메이션
『미소녀전사 세일러 문』이란 작품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최소
한 제목은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작품이 일본 내에서 방영중이던
1990년대 초반에는, 제대로 본 적도 없으면서 이 작품을 유치하다느니 어
린이용 만화라느니 하는 등 하나의 작품으로 보지 않는 분위기가 국내에서
는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기동무투전 G건담』이나 『신기동전기 건담W
』와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보기나 하고서 싫다면 모를까, 제대로 보지도
못한 작품을 유치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는 점이 필자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
았다.)
그러나 국내에서 『세일러 문』이 방송되자 분위기는 일변했고, 이제 와서
는 이 작품에 대해 굳이 유치하다고 비난하는 사람은 적어졌다. 사실 기본
적으로 어린이용이 대세인 애니메이션에서 어느 만화 영화는 '유치'하지 않
았단 말인가? (물론 성인용은 제외하고.) 그런 아동적인 '유치'하다는 한
계를 넘어서서, 거기에서 나름대로 감동을 만들고 재미를 만들어내니까 우
리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애니메
이션 작품에 대해 설정상의 단순함이나 반복되는 스토리 구조 등만으로 유
치하다고 매도하는 것은, 결국 별 의미가 없는 비판인 것이다. 연출이 잘
못 되었다든가 작화 수준이 낮다든가 하는 것이라면 물론 얼마든지 말할 수
있는 문제겠지만, 『세일러 문』의 경우 TV판인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매
우 수준 높은 연출과 작화 등으로 인상 깊은 작품이었다.
이 『세일러 문』 시리즈는 일본에서 무려 5년간 장기 방영되며 모두 3명의
감독이 총연출을 담당했다. 가장 첫 번째 시리즈인 『미소녀전사 세일러
문』과 두 번째 시리즈인 『미소녀전사 세일러 문 R』은 『금붕어 주의보!!
』로 유명한 사토 준이치 감독이 연출했었고, 뒤를 이어 『세일러 문 R』
의 중반부터 『미소녀전사 세일러 문 S』, 『미소녀전사 세일러 문 Super
S』까지를 연출했던 사람이 바로 이번에 소개하려는 『소녀혁명 우테나』의
감독 이쿠하라 쿠니히코이다.
많은 애니메이션 팬들이 특정 작품에 대해 '유치하다' 혹은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어딘가 자학적인 평가를 내리는 데에 대표적인 요인은 아마도
'뱅크[bank]' 처리라는 기법이 아닐까 한다. 과거에 이미 사용한 필름을
다시 한 번 반복해서 삽입시키는 것을 가리키는 이 용어는, 주로 SF 로봇
물에서의 변신 및 합체 장면, 마법소녀물에서의 변신 장면 등에서 쓰이는
반복 장면과 같은 경우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 외에 스토리가 매 화 반복된다는 점도 시청자로 하여금 유치하다고 느끼
게 하는 큰 요인인 듯 하다. 과거 『마징가 Z』부터 시작된 수많은 거대로
봇물들이 그랬고 『요술공주 밍키』 이후의 수많은 변신 마법소녀물들이 그
랬듯이, 대부분의 장편 TV 애니메이션은 처음과 끝 몇 화에 대부분의 스토
리 전개가 집중되고 중반에는 1화 완결의 옴니버스 방식으로 일관하는 경우
가 많다. 이것은 비용 절감 문제라든가 1주일에 한 화씩 꼭 제작해야 하는
TV판 애니메이션 제작에 따르는 문제점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를 꼭 유치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분명히 스토리 전
개에 힘을 기울이기 보다는 일견 별 필요 없어 보이는 에피소드를 중간에
잔뜩 삽입시키는 것은 작품의 완성도 측면에서 낭비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TV 애니메이션의 장르적 특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단견
이 아닌가 한다. 극장판이 아닌 이상 모든 애니메이션 작품은 기본적으로
많은 물량을 짧은 시간 안에 제작해야 한다는 상업적 특성도 가질 수 밖에
없다. 극장판의 경우에도 장기간에 걸쳐 한 편을 만드는 대신 그만큼 흥행
할 수 있도록 작화를 비롯한 모든 면에 있어서 완벽한 작품으로 완성시켜야
만 한다는 제한이 있다. 그런 상황속에서 장편 TV판의 내용 전체를 스토리
전개로만 끌고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세기 에반겔리온』, 『천
공의 에스카플로네』 등 최근의 고 퀄리티 TV판의 대부분이 겨우 26화로 완
결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이보다 긴 장편 애니메이션으로서 옴
니버스 형식을 버리려고 한다면 결국 다음 세 가지 한계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첫 번째, 중간에 반드시 지금까지의 스토리를 소개하는 총집편을 넣는다.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의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은 기존에 방영했던 내
용으로 총집편을 만들 때, 실로 편집을 절묘하게 하여 마치 새로운 내용의
한 화인 것처럼 연결을 매끄럽게 하는, '총집편의 귀재'로 유명하다. 최
근에는 안노 히데아키 감독이 이런 총집편에서 특출한 재능을 선보이기도
했다.)
두 번째, 작품 도중에 갑자기 퀄리티가 떨어진다.
(국내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이상한 바다의 나디아』의 경우 중간의
제 2부 '섬 편'에서 갑작스럽게 퀄리티가 급락했다. 『나디아』는 방영
도중 걸프전이 터져서 당시 이 작품을 방영하던 일본의 공영 방송 NHK가 특
집 방송 때문에 거의 1달 이상 방영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제
작사로서는 뜻밖에 제작 기간을 번 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퀄
리티의 급락을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보다 더 과거의 작품인 『초시공
요새 마크로스』의 경우에도 중반부의 제작을 거의 외국 하청으로 해결했기
때문에 퀄리티가 갑자기 떨어졌던 기억이 새롭다.)
세 번째, 시청율이 낮아진다.
('추리물'이라는 비슷한 장르의 두 작품 『킨다이치 소년의 사건부』 (국내
제목 『소년 탐정 김전일』)와 『명탐정 코난』이 둘 다 현재 TV판으로 일
본에서 방영중이다. 그러나 시청율은 압도적으로 『명탐정 코난』 쪽이 높
다. 물론 작품 자체의 질적 차이가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명탐
정 코난』은 옴니버스로 대부분의 사건이 1화 완결이고 『킨다이치 소년의
사건부』는 거의 모든 사건이 몇 화씩 이어지는 스토리물이라는 차이가 시
청율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좀 더 자
세히 설명하겠다.)
『킨다이치 소년의 사건부』와 『명탐정 코난』의 예를 보아도 알 수 있듯
이, 일반적으로 시청율이 높은 애니메이션은 대개 옴니버스 스토리인 경우
가 많다. TV판의 인기 작품들을 나열해보면 이상하게도 상당수의 애니메이
션 팬들이 '유치하다'고 하는 작품들이 대개 시청율은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결국 이런 상황 때문에 대중적인 인기와 작
품성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생긴 것이겠다.
하지만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 곧 '반비례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대중적인 히트 작품은 상업성에만 비중을 두었을 뿐 작품성이 낮다는 것은
편견에 불과하다. 필자가 이런 판단을 내리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 바로 『
미소녀전사 세일러 문』이었다. 어딘가 구태의연한 설정, 일견 유치해보
이는 스토리 전개, 낡은 수법의 캐릭터 구성, 하지만 그 안에 존재하는
것은 인류 보편의 주제를 솔직 담백하게 말하는 주제였고 눈물을 흐르게 하
는 감동이었으며 화려한 작화와 전형적인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탈바꿈시키
는 뛰어난 성격 묘사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한 상태에
서는 선입관을 가지기 쉽지만 일단 직접 보고 편견을 버리면 누구나가 쉽게
감동할 수 있는, 대중적인 걸작 반열에 놓을만한 작품이라고 인정할 수 있
는 작품이었다.
그러한 『세일러 문』 시리즈에 이어서 이쿠하라 쿠니히코 감독이 제작 개
시했던 『소녀혁명 우테나』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주목했던 것
이다.
1997년 3월 마지막 주부터 일본 TV 토쿄에서 방송 개시한 이 작품은 초반부
터 그 기묘한 세계관과 전혀 종잡을 수 없는 스토리 전개로 많은 팬들의 마
음을 사로잡았고, 단연 1997년 후반기 최대의 문제작으로 자리잡았다.
또한 1997년에 가장 주목받은 작품으로 〈애니메이션 코베 '97〉 TV 부문
최우수상을 획득하기도 했다. 필자도 『신기동전기 건담W』나 『신세기 에
반겔리온』 등 최근의 TV판 부흥기의 걸작들에 이어서, 자연스레 이 『소
녀혁명 우테나』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결국 방영이 시작된지 단 두 달 후
인 1997년 6월부터 필자가 맡고 있는 여러 잡지의 컬럼에서 대대적으로 이
작품을 소개해왔다. 방영이 끝난 지금은 계속 발매되고 있는 LD와 CD 등으
로 다시금 『우테나』의 매력을 되새기고 있는 중이다.
일단 간단히 작품을 소개해보겠다. 하지만 미리 말해두는데 이 작품은 단
순한 줄거리 소개만으로는 절대 그 매력을 느낄 수가 없다. 이 『우테나』
란 작품은 그 스토리만으로는 충분한 매력을 느끼기 힘든 작품이다. 아니
굳이 말하자면 이 작품에서 스토리는 '덤'에 불과하다. 작품의 수많은 이
미지들, 아이템들, 캐릭터들을 유기적으로 연관시키기 위해 스토리가 존
재하는 것일 뿐, 이 작품의 의의는 스토리보다 '이미지'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뭔가 감동적이고 위대한 이야기만을 추구하는 스토리 지상주
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에게는 별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잘 생각해보면 굳이 어떤 작품에서 반드시 스토리가 있어야 명작이 될 수
있다는 법칙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스토리가 없는 예술 작품도 충분히
존재할 수 있지 않은가. 시[詩]라든가 미술에는 스토리가 없어 보이는 작
품도 상당수 있어 왔다. 애니메이션에서도 그런 시도가 평가를 받지 못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스토리에는 상관없이 이미지로만, 혹은 작화로만,
혹은 캐릭터로만 작품을 구성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론으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우테나』는 마치 '시[詩]'와도 같은 애
니메이션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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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인공 텐죠 우테나는 중학교 2학년생의 여자아이로, 남자 교복을 스스
로 개량하여 입고 다닐 정도로 개성적인 성격이다. 그런 그녀의 중성적인
매력이 작품의 큰 축을 이루고 있지만, 그 외에도 이 『소녀혁명 우테나』
란 작품에는 여러 가지 수수께끼가 담겨 있다.
우테나가 다니는 사립 오오토리 학교에는 '장미의 신부'라고 불리우는 히메
미야 안시란 여자아이가 있는데, 그녀를 둘러싼 결투가 비밀리에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이 결투를 하는 사람은 '듀얼리스트'라고 불리우는데, 두
사람이 가슴에 장미를 꽂고 검으로 결투를 벌여 그 장미를 떨어뜨린 측이
진다는 룰이다. 이긴 사람에게는 장미의 신부가 주어진다는데, 장미의 신
부를 손에 넣으면 '세계를 혁명하는 힘'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 힘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또한 장미의 신부는 결투의 승자에게
절대 복종해야한다. 또 결투의 승자는 장미의 신부 가슴에서 출현하는 '디
오스의 검'을 가지고 싸울 수도 있다. 이 검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감
추어진 비밀의 힘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세계
를 혁명하는 힘'인지는 알 수 없다.
또한 결투는 반드시 학교 서쪽에 있는 숲속에 있는 결투 광장에서 벌어지는
데, 이곳은 일반 학생은 출입금지이고 '장미의 각인'을 지닌 듀얼리스트들
만이 장미의 문을 지나 출입할 수 있다. 또한 결투 광장은 장미의 문을 지
나 나선 계단을 올라가면 존재하는데 이상하게도 숲 바깥에서는 볼 수가 없
다. 어떤 종류의 이공간인 것일까? 그 결투 광장의 상공에는 거대한 성이
신기루처럼 떠있는데, 이것 또한 무엇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작품이 시작할 당시 장미의 신부 히메미야 안시는 오오토리 학교 고등부의
2학년생인 학생회 부회장 사이온지 쿄이치에게 속해 있었다. 그러나 이 때
에는 디오스의 검이 그냥 단순한 검일 뿐이었다. 하지만 주인공 우테나가
결투에서 승리하여 장미의 신부를 손에 넣자 나타난 디오스의 검은, 결투
광장 상공의 성에서부터 내려온 디오스의 환영을 동반한 수수께끼의 힘을
발휘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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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작품 초반의 설정이다. 그러나 이번에 발매되는 게임에서는 설정과
세계관만 TV판에서 따왔을 뿐 완전한 오리지널 스토리로 진행된다고 하니,
TV판의 스토리보다는 이 기사 말미의 캐릭터 소개가 게임을 즐기는 데에는
더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소녀혁명 우테나』는 지난 1997년 12월 24일 최종 제 39화 〈언젠가 함께
빛나줘〉로 막을 내렸다. 필자로서는 대단히 아쉬운 일이지만, 또 의외의
부분에서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안겨주는 멋진 결말이었기 때문에 나름대
로 만족하고 있다.
『우테나』는 기본적으로 제 1부 '학생회편' (제 1화∼12화), 제 2부 '흑
장미편' (제 13화∼24화), 제 3부 '오오토리 아키오편' (제 25화∼33화),
제 4부 '묵시록편' (제 34화∼39화) 등으로 스토리를 구별지어 볼 수 있다.
1부에서 중요한 역할(?)로 등장하던 그림자 소녀 A코와 B코가 마치 우주인
이었다는 듯한 내용을 보여주고 12화에서 사라져버린 후, 총집편인 13화를
지나 제 14화부터는 그림자 소녀 C코와 흑장미회의 검은 듀얼리스트들이 등
장하는 등, 각 부분마다 스토리상 큰 변화가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이 과거 『세일러 문』을 비롯한 유사 작품들에서 남발되던 '뱅크'
(반복 장면) 처리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과거에도 도중에 요술봉이
바뀌는 작품 (『마법의 천사 크리미 마미』=국내명 『천사소녀 새롬이』,
『마법의 요정 페르샤』=국내명 『샛별 공주』등)도 있었고, 『세일러 문
』에서도 새로운 캐릭터를 등장시키거나 새로운 필살기를 선보이는 등 조금
씩은 변화를 주었다. 하지만 『우테나』에서는 조금씩이나마 반복되는 장
면을 줄이거나 작화의 변화를 주어서 가능한 한 다르게 보이려는 노력을 엿
볼 수 있다. 대개의 변신 마법소녀물이 똑같은 변신 씬을 몇 번이고 반복
해서 사용했던 것과는 달리, 『우테나』의 '반복 장면'은 매 화 계속되지
는 않고 가끔씩 조금이나마 변화를 주는 등 완전히 똑같지 않게 만들었다는
특징이 있는 것이다.
보통 TV 애니메이션을 비판할 때 이런 반복 장면의 다용[多用]이 단점으로
지적되곤 하는데 필자의 의견은 다르다. 물론 기본적으로 같은 장면의 반
복은 제작비 절감의 차원에서, 즉 상업적인 이유로 시도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코미디언들의 '유행어'와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 인
기있는 코미디언들은 한두 가지의 유행어쯤은 갖고 있는 법이다. 그 코미
디언이 출연하면 시청자들은 다들 그 유행어를 말하는 순간을 기다리게 된
다. 그리고 그 유행어가 튀어나오는 순간, 이미 그 말이 나올 줄 알고 있
었음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마법소녀의 변신 장면이나 로봇의 합
체 씬도 비슷하게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즉 그런 장면들은 이야기의 흥
을 돋구고 클라이맥스에 이르게 하는 요소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그 장면이 나올 줄 뻔히 알면서도 매 화 반복되는 그 장면을 기
다리게 되고, 또 계속 반복되어 입에 밴 그 장면의 배경음과 대사와 노래
를 따라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반복 장면의 효과인 것이고 시청자들이 매
화 똑같은 밍키의 변신 장면을, 세일러 문의 변신 장면을, 우테나의 결투
장면을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인 것이다.
여기까지 『소녀혁명 우테나』란 작품이 가지는 의의에 대해서 길게 설명해
봤는데, 페이지 관계상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따라서 신지의
경우를……이 아니고, 최종 제 39화에 대한 이야기만을 집중적으로 다뤄보
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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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예고》
본편의 충격도 미처 가시지 않은 채, 중앙탑에 꽂힌 하늘을 나는 원반에
또 다시 아연해진다. 상연되는 것은 '속 장미 이야기'.
"가짜 왕자님으로는 공주님이 될 수 없어." "그때 기적의 힘이!" "그래봤
자 만화잖아?" 쏟아지는 절대운명묵시록. 그림자 소녀 주연의 우테나.
공포와 기대 속에, 성취의 시간은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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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우테나』는 『우테나』였다. 『신세기 에반겔리온』의 최종화가 비
난 받았던 이유는, 마지막 2화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GAINAX라면
그래도 어떻게든 이야기의 결론을 내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소녀혁명 우테나』의 경우에는 '이건 분명히 시청자들
의 기대를 배신하는 엔딩이 될 것이다'라고 처음부터 생각하도록 작품을 만
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예상외로 평범하게 끝난 것처럼 느껴진다.
안시가 오빠인 아키오를 버리고 우테나를 선택하는 것이나, 마침내 우테나
를 '우테나님'이 아니라 '우테나'라고 그냥 부르게되는 장면 같은 것이 바
로 그런 '평범한 결말'이다. 더 이상 자세한 내용은 아직 보지 못한 분들
을 위해 미뤄두겠다. LD로도 마지막화까지 발매되는 것은 1998년 6월 하순
이니 아직 한참 멀었고, 게다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우테나』의 완결
편을 직접 보려면 적어도 올 여름까지는 기다려야 할테니. 이런 작품은 너
무 일찍 결말을 알아버리면 재미가 반감되는 법이다.
11화에서 학생회장 키류 토가와의 결투에 진 우테나가 안시에 대한 자기 나
름대로의 해석과 자신만의 정의를 역설하는 장면은, 마치 제 1화때 우테나
에게 패한 사이온지 쿄이치가 안시를 끝까지 따라다니며 자기중심적으로 해
석하던 장면을 연상케 했다. 초반부터 암시되었던 '우테나가 생각하는 정
의[正義]가 무너질 것이다'라는 예상 또한 확실히 드러났다.
초반의 압권은 단연 12화의 키류 토가와 재결투에서 보이는 안시의 심리 묘
사. 물론 『우테나』에는 순간적으로 숨을 멈출 만큼 충격적인 장면이 속
출하지만, 이 심리 묘사는 정말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리고 이 12화에서
의 안시가 완결편에서는 결국 스스로 우테나를 선택할 만큼 변화한 것, 이
것이야말로 '혁명'에 다름 아닌 것이다. 드디어 우테나는, 안시는, 자신
들의 세계를 혁명한 것이 아닐까.
또한 제 4부 묵시록편. 『우테나』란 작품은 전편에 걸쳐 수많은 '상징'들
이 묘사되고 있지만, 4부에 접어들면서 그런 경향이 한층 심해졌다. 화면
가득히 흘러나오는 상징들은 의미 없는 듯도 보이지만, 사실 실제로도 특
별히 스토리에 영향은 없이 그저 나열된 것으로 생각된다. 아니, 의미가
있더라도 시청자들로서는 알 수가 없는 것이고 굳이 알 필요도 없기 때문이
다. 각자의 가슴속에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리면 그것이 진실이고 그것이
자신에게 '세계의 혁명'을 이끌어내주는 열쇠인 것이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알 수 없었던 수많은 암시들. 장미의 문이 가리키
는 것은? 초반부에서 우테나처럼 생긴 어떤 여자애와 안시가 들어 있던 관
이 뜻하는 것은? 세계의 끝이란? 왕자님은?
일부에서는 『에반겔리온』, 『나데시코』에 이어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엔딩'으로 끝난 『우테나』를 두고 'TV 토쿄의 전통'이 아닌가 하는 말도
나오고 있다. (위 3작품 모두, 우리 나라의 SBS와 비슷한 지역 민방 'TV
토쿄'가 메인 방송국이었다.)
『소녀혁명 우테나』는 모든 컷을 통해 엄청난 정보량을 시청자들에게 쏟아
내었던 작품이다. 아주 약간의 표정, 몸짓에도 엄청난 양의 정보가 숨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시청자들을 무시하는 난해한 작품인 것은
또 아니다. 위에서도 썼듯이, 오히려 시청자들의 '틀림 없이 예상을 벗어
나는 엔딩이 될 것이다'는 생각에 어긋날 만큼 그야말로 친절한(?) 엔딩이
었다. 마침내 우테나와 안시에 의해 '세계'는 혁명되었다는, 말 그대로
딱 들어맞는 정상적인 엔딩이었다.
또한 『우테나』의 영상이 보여준 충격은 단연 압권이다. 『신세기 에반겔
리온』이 애니메이션으로서는 보기 드문 장면 배치와 화면 구성을 통한 영
상미를 선보였지만, 사실 그것도 극장판에서나 화려한 작화를 바탕에 두고
본격적으로 보여졌을 뿐, TV판의 대부분에서는 비교적 평범한 편이었다.
하지만 『우테나』는 확실히 TV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지금까지의 그 어떤 작
품과도 다른 영상 구성과 묘사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그
렇다고 이 『우테나』가 엄청난 예산을 들인 블럭 버스터인가 하면, 전혀
그렇지도 않다. 이것은 『세일러 문』에서 갈고 닦은 감독 이쿠하라 쿠니
히코의 TV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의 역량이 어느 선에 도달해 있는지를 잘
알 수 있게 하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소녀혁명 우테나』는 '사춘기의 소녀가 겪는 자기애[自己愛]와
타애[他愛] 사이의, 또한 현실과 허상 사이의 갈등'을 수많은 암시와 모호
한 표현으로 엮어낸 이야기인 것이다. 실상 이 작품은 TV로 방송되는 것을
그냥 지나가면서 볼 때와 직접 작품을 소유하고 몇 번씩 되풀이하며 볼 때
의 느낌이 다르다.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 못 보고 지나쳤던 암시, 무
심코 넘어갔던 대사의 새로운 의미 등이 눈에 띄는 것이다. 『우테나』는
처음부터 그런 작품이었던 것이다.
『기동경찰 패트레이버』로 유명한 만화가 유키 마사미씨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유키 마사미는 올해 41세로, 일본에서 애니메이션 붐이 처음
일어났던 시대에 학생 시절을 보냈던 세대이다.)
매달 받는 애니메이션 잡지를 들춰보며 칼라풀한 지면에 눈을 빛
내면서 신작 애니메이션 정보를 읽고 있다 보면, 가끔씩 '현기
증'이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건 역시 나이 탓일까?
호오……. 최근에는 이런 것이 유행하는군. ……따라갈 수가
없어…….
하지만 나도 소년 소녀들에게 오락을 제공하는 입장의 인간이다.
나이를 먹었으니 모르겠다고 포기할 수는 없어!
그리고는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소녀혁명 우테나』의 TV판을 아직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잡지 부록으로 나온 『우테나』 관련 서적을 집어들
었다.
오오! 그러고보면 이건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것 같군. 어디
한 번…….
………….
뭐라고 쓰여있는 건지 알 수가 없어…….
애니메이션은 확실히 변화하고 있다. 더 이상 예전의 법칙이 통용되는 시
대가 아니다. 『신세기 에반겔리온』으로 시작된 애니메이션 법칙의 파괴
는, 『소녀혁명 우테나』에 이르러 확실히 하나의 조류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단언컨대,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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