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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현재 기고될 예정의 기사입니다.  기고된 후에는 링크가 바뀌게 됩니다.)


2003.07.08/10번째 원고

오는 2003년 7월 17일 개봉 예정인 한국 애니메이션 최대의 대작  『원더풀
데이즈』.


제작진들은  이제 그런 소리를 듣는 것도  지겹다고 하지만, 제작기간 7년,
제작비 126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스케일만으로 인구에 회자되는 것도 어쩔
수가 없을 만큼  워낙 오랜 기간 실체는 보지 못한 채  '한국 애니메이션의
희망'이라고  알려져 왔던 이 작품이  드디어 공개를 눈앞에 두고 시사회를
가졌다.


『원더풀 데이즈』의 배경은 서기 2142년. 오염물질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
는 에코반이라는 도시와, 그 주변의 선택되지 못한 사람들의 사는 마르라는
곳이 배경이다. 이때의 지구는 이미 오염으로 가득한  '빛이 사라진 세상'.
에너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구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건설한 에코반이  오
염물질이 줄어들기 시작하자  그에 대한 대안으로 유전을 불태워 오염을 확
산시키려 하고, 마르의 레지스탕스들이 그것을 방해하려 한다는 내용이  주
된 스토리 라인이다.

그리고 세 명의 주인공 수하, 어린 시절  소꿉동무였던 에코반의 여성 정찰
대원 제이, 제이와 함께 에코반에 있는 경비대장 시몬의 3각관계도  작품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에코반 출신이지만  어린 시절 시몬 탓에 쫓겨나 죽은
줄로만 알았던 수하는  에코반에 잠입해서 정보를 캐내다가  제이와 재회하
고, 거기서부터 『원더풀 데이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원더풀 데이즈』에 대해서는  벌써 제작되기 한참 전부터 시작된
비판의 중심은 바로  그 스토리와 설정의 부실함에 있다. 결국 최종 개봉되
는 작품 역시, 87분 동안 관객을 압박하며  지속되는 엄청난 퀄리티의 화면
과는 달리 빈약한 줄거리와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내는 설정 상의 실수는
눈에 거슬린다. 시나리오만 해도 몇 번을 바꿨으며  캐릭터 디자인, 하다못
해 오피셜 포스터와 로고 디자인까지 7년의 세월 동안 여러 번 바뀌었지만,
결국 애초부터 '환경'을 내세운 테마 자체가 이미 애니메이션계에서는 10년
이상 전부터 나온  진부한 주제라는 사실이 가장 큰 문제점인 것이다. 그리
고 CF감독 출신으로 장편 애니메이션을 처음 연출한 김문생 감독은 '시나리
오가 비주얼에 비해 약하다'는 평가에 대해, "드라마는 문학을 통해서도 충
분히 얻을 수 있지만, 영화는 시각과 청각으로  전달하는 미장센의 예술"라
고 하며 "줄거리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 불친절한 영화라는 지적을 이해한
다. 보편적인 이야기를 스타일있게 보여주려던 것이 의도"라고  했지만, 완
성된 『원더풀 데이즈』가 관객에게 줄거리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 불친절
한 영화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별로 그만큼의 줄거리가 들어있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보편적인 이야기라기보다는 이미 애니메이션 팬들에겐  1984년 미야자키 하
야오 감독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부터, 동서양의 수많은 작품들이 20년
넘게 지속해온 '환경'이라는 테마를, 역시 수십 수백 년간 되풀이해온 '3각
관계' 속에서 그나마도 대단히 진부한 전개로 진행시킨 것 뿐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감독은  '미장센'이라고 말하는 화면 속의 많은 아이템, 신(scene)들  역시
관객들에게  어떤 '스타일'을 전해주는 역할에는 실패하고 있는 듯 보인다.
다만 예고편에서부터 관객들에게 강하게 인상지어졌던  오토바이의 질주 장
면이 작중에서 몇번이고 반복되는 점, 그리고  현재의 최종 버전 이전에 사
용되었던 포스터에도 보였던 글라이더와  수하가 날리는 종이비행기의 비행
장면 등이 기억에 남는다.




다만 스토리의 문제점과는 달리, 화면에 있어서는 단연  『원더풀 데이즈』
의 성과는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다. CG로 제작된 3D와  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2D의 조화는, 20세기폭스사의  2000년도 작품 『타이탄 A.E.』에 비
해 압도적으로 향상된 결과를 보여준다. 일본의 거장 린타로 감독의 2001년
작품  『메트로폴리스』와 비교하더라도, 『원더풀 데이즈』가  7년의 기간
동안 126억원을 쏟아부운  화면의 질감은 압권이다. 인물은 2D, 배경은 3D,
건물과 소품은 미니어처로 제작하며  '세계 최초 유일한  멀티메이션(Multi
Layered Animation)'이라고까지 자평했지만, 그것이 그저 자화자찬에  불과
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스크린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굳이 비판하자면, 87분의 러닝타임 내내 너무나도 꽉 찬 화면만을 쉴 틈 없
이 내보이기 때문에 부담스럽기까지 하다는 정도. 이것은 김문생 감독이 CF
감독 출신이라는 점과도 연관되는 듯 하여 의미심장하다. CF에서는 짧은 러
닝타임 동안 시청자를 붙들어두기 위해서 단 1초도 낭비없이 확실한 화면을
보여줘야 한다. 영화는 CF보다 훨씬 긴 만큼  스토리 중간중간, 혹은 한 화
면 안에서도  부분부분 '쉴 곳'을 마련해주는 것도 필요한데, 너무 굴곡 없
이  87분의 러닝타임 전체가 '클라이맥스'다 보니  몇몇 비평가들의 말처럼
꽉 찬 화면임에도 지루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게다가 가장 큰 문제는  이 작품이 결과적으로 흥행에 성공할지, 또 성공하
더라도  투자 비용이 상쇄될지에  의문이 남는다는 점이다. 126억원이 넘는
제작비는, 이 작품의 손익분기점을 300만명을 넘는  높은 수치로 만들었다.
하지만 감독도 "욕심 같아서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200만명을 넘
어보고 싶지만,  1차 국내 관객동원 목표는 100만명 정도다"라고 밝히고 있
듯이,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2002년 여름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
불명』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200만명대,  2001년 겨울 『몬스터 주식
회사』 (월트디즈니)가 100만명 정도에 머물렀던 점, 그리고 이전까지 국내
애니메이션 흥행 최고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드림웍스의 『슈렉』 역시  250
만명 정도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더 그렇다.

그나마 2001년 『슈렉』이 세운 관객동원기록이  1994년부터 『라이온 킹』
(월트디즈니)이 갖고 있던  역대 애니메이션 흥행기록인 '서울관객 92만명'
을 장장 7년만에 돌파했다는 것은, 국내에서 애니메이션이 성공하기가 얼마
나 어려운지를 대변해주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살펴봐도 126억원의 투자액은  한국 시장의 실정을 무시
한 처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테즈카 오사무의 원작을  5년에 걸쳐 만들
어낸 대작 『메트로폴리스』는  총제작비 12억엔으로  『원더풀 데이즈』와
비슷한 규모. 그러나 흥행수입은 7억 5천만엔에 불과하여 실패로 끝났다.
다만 일본의 경우 DVD 등의 판매가 한국에 비해 높고, 해외배급에서도  '저
패니메이션'의 이름으로 훨씬 나은 사정이기 때문에  손해액은 다소 줄어들
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상황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슈렉』, 『라이온 킹』처
럼 '가족영화'라고 보기도 힘든 『원더풀 데이즈』가, 과연  제작진들의 의
도대로 '영 어덜트(Young Adult)' 세대에게 극적 재미를 주면서  흥행에 성
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과연 『원더풀 데이즈』는 한국애니메이션에  '희망의 날'을 오게 할 수 있
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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