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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원더풀 데이즈』 토론회 참석기.                관련자료:없음  [31742]
 보낸이:선정우  (mirugi  )  2003-07-13 03:40  조회:650

지난 2003년 7월 11일,  사단법인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가 주관하고 한국
문화콘텐츠진흥원이 후원한 「한국 애니메이션의 비전에 대한 토론회─『원
더풀 데이즈』를 중심으로」에 참가했습니다.


최근 『원더풀 데이즈』에 대한 논란에 대한 몇 가지 해답과,  기타 앞으로
한국 애니메이션의 발전을 위해 참고될 만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 것 같아서
그 내용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곧 몇몇 잡지 등 언론에도 기사가 실리겠습니다만,  지면에는  분량 제한상
당일 토론된 내용이 전부 발표되기는 힘들테니까요.  이 글에서도 물론  상
당히  생략을 했습니다만,  그래도 『원더풀 데이즈』에 대한 이해를  보다
높일 수 있는 자료가 될 듯 하여 써봤습니다.




덕분에 꽤나 오랜만에 엄청나게 긴 글이 되어버렸습니다. ;;  끝까지 다 읽
기에는 대단히 고생스러울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당일 오후 2시 30분이 지
나 시작되어 원래 계획되었던 5시를 훨씬 넘겨  6시 이후까지,  8명의 참석
자와 방청객들의 열띤 토론의 내용을 담으려니 무척 길어지는군요.  그나마
도 사실 많이 줄인 겁니다. -_-




『원더풀 데이즈』 작품  본편의 내용에  직접 연관되는,  시나리오 부분에
대한 논의 중 일부는 스포일러의 우려가 있으니  다른 글에 따로 적도록 하
겠습니다.


(※문중 경칭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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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애니메이션의 비전에 대한 토론회─『원더풀 데이즈』를 중심으로」
행사는,  '삼성벤처투자'와 함께 『원더풀 데이즈』의 크레딧에 '제공'이라
고 표기되어 있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후원하여 진행되었다.


전체 사회는 한서대학교 영상미술과 김윤 교수가,  토론의 발제자로는 세종
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한창완 교수,  애니메이션 시나리오작가이자 독
립 애니메이션작가 모임 '애니마포럼' 연구원인 강상균씨,  만화애니메이션
사이트 '만화인' 운영자 서찬휘씨,  그리고 필자가 발표를 맡았다.

종합토론의 패널로는 이에 더불어 만화평론가이자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
작과 박인하 교수,  애니메이션감독이자 동대학 애니메이션과 나기용 교수,
그리고 『원더풀 데이즈』의 메인 디렉팅을 맡은 이경학 프로듀서가 참가했
고,  역시 『원더풀 데이즈』에서 마케팅을 담당했던 황경선 프로듀서도 토
론에 자주 참여했다.




발제자의 발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 발제:한창완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
  한국 애니메이션의 시각을 전문화시킨 프로젝트
   - 애니메이션적인 초사실주의의 이데올로기화  (『원더풀 데이즈』를 중
     심으로)

*제2 발제:강상균 (애니메이션 시나리오작가, 애니마포럼 연구원)
  한국애니메이션 시나리오의 초상:『원더풀 데이즈』

*제3 발제:서찬휘 (만화애니메이션사이트 '만화인' 운영자)
  『원더풀 데이즈』,  관객으로서의 이야기

*제4 발제:선정우 (만화칼럼니스트)
  『원더풀 데이즈』는 한국애니메이션의 '희망의 날'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개인적으로는 『원더풀 데이즈』의 시나리오에 대한 논란에  사실상 종지부
를 찍어준,  제2 발제자 강상균 작가의 발표 내용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 글에서는 가능한 한 스토리가 크게 밝혀지지 않는 한도 내에서 요약하도
록 노력했으나,  그렇다고 해도 조금은  줄거리가 드러나는 측면이  있다는
점에 유의해주기 바란다.

보다 상세한 제2 발제의 내용에 대해서는,  강상균 작가의  허락을 얻을 수
있다면 따로 다른 글로서 정리하도록 하겠다.




나머지 제3 발제는 만화인 사이트 http://manhwain.com/ 에서,  그리고  본
인의 발표는 필자의 사이트나 지금껏 게시판에 올린 글들로도 충분히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하여 분량 관계상 생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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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자의 발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대부분의 용어는 발제자의 원고에서  그대로 발췌한 것으로,  간혹  필자도
알 수 없는 엄청난 용어(……)들이 나올 경우가 있으니,  그 점을 감안해서
읽어주기 바란다.

굳이 그런 용어들의 정의를 알고 싶다면,  각 발제자에게 직접 문의하길 바
란다. ;;





■제작방식의 '파이프라인' 문제

한창완 교수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시각을 전문화시킨 프로젝트 - 애니메
이션적인 초사실주의의 이데올로기화  (『원더풀 데이즈』를 중심으로)」에
서,  한국 애니메이션의 1990년대 중반 이후 새롭게 시도되어 왔던 제작 르
네상스가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성공 사례를 도출
해내지 못한 것에 대해,  '초사실주의(hyper-reality)' 미학을 전제로 하는
애니메이션의 표현을 구축하는 제작방식의 '파이프라인(pipe-line)' 문제를
제기했다.

즉 매번 개봉되었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의 기술적 진보가  실제 시행착
오의 결과에 기반한 벤치마킹과는 전혀 연계되지 못한 채 매번 유사한 실패
를 반복하는 악순환을 거듭해오며,  결국 국내 관객으로부터 외면 당하도록
만들어버리는 자승자박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런 시행착오에서 도출된 문제점이 항상 반복적인 자체 비판에
만 머물렀고 희망적 대안이 되지 못했던 원인을,  현재  한국 애니메이션이
'제작인력과 제작력의 교체 과도기'이며 또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복합적
인 혼재기'라는 점에서 찾았다.




거기에서 한창완 교수는 『원더풀 데이즈』에 대해,  "그런  상황적 요구에
직면하여 나름대로  다양한 층위의 제작 노하우를 실험하며  선택적 대안을
구성한 프로젝트"라고 설명하며,  그 의의를 다음과 같이 논했다.


먼저 『원더풀 데이즈』가 갖는 국내 애니메이션사적 의미는 '제작인력세대
의 교체기가 갖는 과도기적 실험성 담보'로서,  기존의 원·동화인력과  새
로운 신세대 애니메이션마니아 그룹의 신진인력의 결합이  실제 성공적으로
결합될 수 있었음을 보여줬다고 한다.

다만,  "3D 애니메이션이 보여주는 풀샷과 클로즈업의  효과적인 앵글 배치
및 연출이 부족했고,  화려한 배경과 프로덕트의 현란함에 취해  쉽게 설명
하고 지나쳐야 할 부분의 시간이  지나치게 반복적으로 미장센에 노출된 것
이  작품의 긴장도를 스스로 감소시켜 버리는 약점을  가지게 된 부분도 있
다"고 말하며,  "프롤로그의 긴장감과 에필로그의 비장함은 이 작품의 성공
도를 극대화시키고 있지만,  그러한 긴장과 비장함을 연결시키는 세심한 감
정의 복선 구도가 잔잔한 사랑의 멜로로 연계되지 못해 더욱 안타깝게 생각
한다"고 밝혔다.

또한 "환경과 권력에 대한 세심한 주제의식은 이 작품이 갖는 이데올로기성
을 돋보이게 하지만,  이미 제작과정에서 오랜 시간이 지난 탓에  일본식의
사이버펑크에 그 우선권을 뺏겨 버린  아쉬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수직적 주제의식(환경=자본=권력)의 이성적 장치와 수평적 주제의
식(추억=사랑=우정)의 감성적 장치가  적절하게 교차된 시나리오의 구성은,
강력한 이펙트가 부분부분 요소화되어야 한다는 디테일의 필요성을 더 절실
하게 느끼게 한다"고 한창완 교수는 『원더풀 데이즈』의 단점을 설명했다.




그리고 장점으로서는  CGI의 효과적 표현으로  거대한 스케일감이나 금속의
질감을 구현시켰다는 점,  셀 이모션(Cell Emotion)으로 캐릭터의 특화표현
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  원색을 자제한 채 디지털 컬러링으로 일관성 있는
이미지를 갖도록 한 점,  미니어처의 질감 표현,  소니 HDW-F900 디지털 카
메라와 프레이지어 렌즈의 사용을 통한 2D·3D·미니어처 등 다양한 소스의
레이어를 한치의 오차도 없이 합성했다는 점,  배경 그림의  서정성,  그리
고  여러 소스가 복합된 멀티메이션(multimation)의 매력을  제대로 살려낸
합성(composite) 노하우와 음악 등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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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데이즈』의 시나리오에 대해

강상균 작가는  애니메이션 시나리오작가로서의 특성을 살려 「한국 애니메
이션의 초상:『원더풀 데이즈』」라는 발제문에서 『원더풀 데이즈』의 시
나리오가 갖는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특히나 강상균 작가의 발제문은,  『원더풀 데이즈』의 스태프인 이경학 프
로듀서조차도 "좀 더 일찍 나타나시지 어디 가셨다가 이제야 오셨냐"고  말
할 만큼,  지금도 각계에서  논란이 많은 『원더풀 데이즈』의  시나리오가
과연 어떤 점이 문제인지에 대해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어  대단히 인상적이
었다.

사실 필자 역시 시나리오 작가는 아닌 관계로,  분명히  『원더풀 데이즈』
의 시나리오에 불만을 느끼기는 했으나  그것을 이론적 바탕을 토대로 조목
조목 짚어낼 수는 없었다.  '뭔가 이상하기는 한데  제대로 설명을 못 하겠
다'는 필자의 답답함을,  강상균 작가의 발제문은 확실히 해결해주었다.




그럼 도대체 어떤 내용인지 짚어보도록 하자.


일단 강상균 작가는 『원더풀 데이즈』가 기획 2년,  제작 5년의 장구한 시
간과 무수한 난관을 극복하고  드디어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는 점에  우선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사회를 통해  드
러난 작품에 대한 평가가,  막대한 제작규모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실패하여
감당하기 힘든 후유증이 창작 애니메이션계를 강타할 것이란 우려와  단 한
번의 성공 사례도 보여주지 못해 외면 당하고 있는 우리 애니메이션의 위상
을 재고시킬 계기라는 희망이,  개봉 직전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상마저  보
일 정도로 엇갈리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원더풀 데이즈』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의 근거는 대부분 스토리와 내러티
브,  시나리오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자리잡고 있다면서,  이 작품의 출발점
이 1997년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송창수 원작의 시나리오이며 그동안 국
내외 수많은 작가들이 참여하여 백번을 넘게 고쳤을 만큼  시나리오를 중요
시했다고 하는데도 이러한 평가가 내려진 것은 정말 의외라고 말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시나리오부터 문제가 있는 작품이  이렇게 엄청난
금액을 투자 받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하며 강상균 작가는 의문을 제
기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원더풀 데이즈』의 주요 투자자가 되었던 삼성
벤처투자의 차장이자 『원더풀 데이즈』 제작지휘를 맡았던  김성용 차장은
『원더풀 데이즈』 공식 홈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는 점을  참
고로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김성용 차장 - "1999년 10월말,  황경선 PD가 데모와 시나리오를 가지고 투
자유치를 위해 사무실에 왔을 때,  전 애니메이션을 잘 모르고,  잘 모르는
것은 투자 안해요라고 했다.
   후에 데모를 보고,  데모가 주는 전체적인 톤과 느낌,  테크놀로지가 퍽
인상적이었다.
   시나리오는 사실 상당히 어설펐다.  영화 투자 결정의 가장 중요한 점이
기 때문에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도대체 감독이 누군데  이런 어설픈 시나
리오로 영화를 하려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김성용 차장은 김문생 감독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해보고,  "포기하
기에는 사람들이 아까웠고,  투자하기에는 너무 무모했다"라는 판단을 했다
는 것.
그리하여 결국,  두 가지 조건을 내세워 투자 결정을 했다고 한다.  첫째로
시나리오는 끝까지 수정할 것,  그리고 둘째로는 단순 투자자로서가 아니라
실무적으로 같이 일을 하겠다는 조건이었다.  그때에는 제작사 측에서 제시
한 제작비는 45억원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강상균 작가는,  김문생 감독이 2003년 7월 3일  연합뉴스와의 인터
뷰에서  "영화는 미장센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드라마는 책으로  읽으면
된다.  미래가 오늘 우리의 모습과 같다는 보편적 스토리를 극적 장치를 통
해 표현해내고 싶었다.  스토리상으로  불친절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
만 헐리우드 같이 친절하게 하나하나 설명해주고 싶지는 않았다"라며  시나
리오의 문제점을 간접적으로나마 수긍했고,  또한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다
는 감독의 해명조차도  2002년 10월 25일 JOYCINE 뉴스에서는  『AKIRA』의
오토바이 장면 등 영향받은 작품에 대해 언급하며 "결국 관객들에게 보여지
는 건 드라마지 장면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략>  결국 중요한 건 그림
이 아니라 이야기 중심의 영화이다"라고 말했던 것과 완전히 상충되어,  혼
란만 더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작품을 접했던 개인적 견해로서도,  시나리오에 대한  지
적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기는 힘들다고 밝히며,  이러한 문제점이 실은 『원
더풀 데이즈』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창작 애니메이션,  특히
극장용 장편을 만드는 시스템이  얼마나 초보적이고 허술했는지를 자각하게
한다고 원인을 지적했다.




■극장용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의 시나리오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까지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짧은 전성기가 끝난
후,  1995년 정부 차원의 애니메이션 지원 정책이 시작되기까지 이어진  창
작의 공백기가 애니메이션 제작자들과 관객의 수준 차이를 벌려놓았다고 말
하며,  창작 능력이 있는 대규모 제작사들이 적극적인 투자와 개발로  작품
의 수준을 높여 극복한 것이 아니라 애니메이션은 아동용이라는 근시안적인
대처로 일관했다는 점을,  강상균 작가는 비판했다.

그는 특히 "이 아동용에 대한 인식은,  아동을 대상으로 만들기 때문에  유
치해야 한다,  수준이 낮아야 된다는  자기기만이 내포된 것이기에  지극히
위험하다"고 지적하며,  "오랜 하청작업의 타성에 젖어  애니메이션에 대한
평가를  원·동화가 잘 되었는가 아닌가로 판단하는  기득권자들의 논리"가
"기술력은 뛰어나지만 창의력은 전무하다시피 한 사람들이  창작을 독점"해
왔으며  그에 따라 필연적으로  기형적인 창작 시스템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다.


전인구가 4000만밖에 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극장을 찾는 사람을 애니메이
션관객이냐 영화관객이냐 나누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며,  수준 높은 우리나
라 영화들과 세계적 대작들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어떤 극장주도 제한된 관
객을 대상으로 하는 아동용 애니메이션에  스크린을 할애할 리가 없으므로,
결국 누구라도 즐길 수 있는 세련된 작품으로 영화와 경쟁하여 스크린과 관
객들을 확보해야 하는데 기존의 안일한 창작 관행과 정신으로는 결코  시나
리오부터 목숨 걸고 답을 찾는  영화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강상균
작가의 통렬한 지적.

그는 『원더풀 데이즈』의 시나리오는 최소한 창작의 영역에서 무시 당하지
는 않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아동용에서 벗어나 청소년과 성인을 대상으
로 영화와 경쟁하려는 시도를 했다고 평가하면서도,  "문제는 장고 끝에 악
수 둔다는 말처럼 수많은 설정과 서브스토리가 넘쳐 흘러  짧은 러닝타임이
이를  감당하지 못했고,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높은 영화와  직접 비교되다
보니 허술하게 보이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지금까지의 우리 극장용 애니
메이션들이 대부분 시나리오를 논할 것도 없이 한눈에 거부감을 주는  조악
한  수준이었다고 한다면,  『원더풀 데이즈』의 경우 다른 부분들이  기대
이상의 퀄리티를 제공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시나리오의 약점만 부각되는
억울한 상황일 수도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실제로 취향에 따라서는 이 작품을 감상하며  약점이라고 지적된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보는 사람도 있고,  외국에서의 반응도  호의적이라고
하니 극단적으로 시나리오가 좋다 나쁘나 하는 평가는 개봉 후 직접 작품을
관람할 관객들에게 맡기기로 하자"며,  다만 『원더풀 데이즈』로서 한국의
창작 애니메이션이 종언을 고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 극장에서 관객을 사로
잡을 수 있는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을 만드는 시금석이 될 수 있도록,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가능한 한 합리적으로 점검해보는 작업의 필요성을 제기
했다.




그러면서 현재 국내 애니메이션계에 시나리오에 대한 노하우가 거의 축적되
어 있지 못하고 감독이나 PD의 개인적 판단에 맡겨져 있으며,  100개가  넘
는 애니메이션 교육기관 중에 전문적인 시나리오 양성 과정이 전무하다시피
하고  그림을 그리지 못하면  아예 애니메이션학과에 입학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임을 감안해,  현재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의  시나리오를 쓰고
평가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영화적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이라고 말했
다.

어차피 관객의 입장에서는 영화건 애니메이션이건  극장이라는 똑같은 매체
를 통해 접하게 되며,  실제 인물을 촬영했든지 그려냈는지 결국 감독이 제
시하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극의 전개에 공감하고 참여하기 때문이다.  더구
나 『원더풀 데이즈』처럼 극화적인 캐릭터와 사실적인 스토리를 갖고 있으
면,  이 작품이  애니메이션인가 실사영화인가 하는 점은  시나리오 상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갖기 힘들다고 한다.

이에 따라 강상균 작가는 틴하우스에서 제공한 '원더풀 데이즈 시나리오 최
종본'를 바탕으로,  개인적 감상은 최대한 배제한 채 현재 충무로에서 시나
리오를 평가하는 검증된 기준 몇 가지에 의해 점검했다고 한다.

"충무로나 헐리우드식 잣대를 국산 애니메이션에  들이댄다고 비난해도  별
수 없다.  옳고 그르다를 판단하자는 게 아니라,  지금 우리의 영화를 보기
위해 모이는 관객의 발길을  조금이라도 애니메이션 쪽으로 돌리게  만들고
싶다면 영화 쪽의 성공 사례를 배우는 것은 당연히 필요할 것이다"라고  전
제하면서 밝힌,  강상균 작가의 『원더풀 데이즈』 시나리오 평가는 다음과
같았다.




■좋은 스토리의 요건을 갖췄는가?

강상균 작가는 데이비드 하워드·에드워드 마블리 저/심산 역의  『시나리
오 가이드』라는 책을 인용하며,  좋은 스토리에 대한 기본 요건에 대해 다
음과 같은 다섯 항목을 제시했다.


- 관객이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누군가'에 관한 스토리이다.

- 그 누군가는 어떤 일을 하려고 대단히 노력한다.

- 그 어떤 일은 성취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 그 스토리는 최대한의 '정서적 임팩트'와  '관객의 참여'를 끌어낼 수 있
  는 방식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 그 스토리는 '만족스러운 엔딩'으로 맺어져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해피엔딩이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리고 이상의 조건을 『원더풀 데이즈』의 시나리오에 반영하며  점검해보
았다.  '누군가'는 관객이 감정을 이입하는 대상,  즉 주인공이다.  『원더
풀 데이즈』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강상균 작가의 점검은 다음과 같다.

"핵심인물은 수하,  제이,  시몬 3명이다.  그런데  이 작품이 잿빛 구름으
 로 덮인 세상에 '원더풀 데이'가 오게 만드는 내용이라고 할 때  주인공은
 당연히 수하가 된다.  닥터 노아의 뜻을 계승하긴 했지만  결국 제이에게,
 우디에게 했던 푸른 하늘을 보여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에코반과 싸
 우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관객은 수하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을까?  수하에겐 숨겨진 과
 거와 애달픈 사연도 있고,  다른 이들에게 원더풀 데이를 선사하기 위해서
 자신의 희생을 감수한다.  충분히 감정을 이입할 만한 설정이다."


이렇게 전제한 뒤,  "그러나 수하가 어떤 일을 하려고 대단히 노력하는가에
서부터는 의문이 든다.  「월간 뉴타입」 2003년 7월호 P182 『원더풀 데이
즈 설정자료집』 중 제작진이 분석한 수하의 성격에 따르면,  수하는  현실
을 떠나 자유롭게 살고 싶어하는 리버럴리스트라고 하는데,  동네를 어슬렁
거리다 레지스탕스임을 주장하는 불량배들과 충돌하며  동생같은 우디를 데
려오고,  가끔  닥터 노아의 심부름으로 에코반에 침투하는 게  시나리오상
제시되는 수하의 모습이다.  그다지 뭔가를 열심히 하려는 (혹은 하지 않으
려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시나리오를 통해 수하가 강력하게 하려는 일들을 구체적으로 분석
한 후,  "상기 장면들에서 알 수 있듯이 수하는 주변사람들 잘 챙기며 순순
히 희생을 자초하는 다정하고 정의로운 전형적 캐릭터일 뿐이다.  지브롤터
를  꿈꾼다고 하면서도  현실을 버리고 떠나겠다는  어떠한 시도도 없으며,
말로는 영웅 노릇 할 생각 없으니 에코반에는 가지 않겠다고 해도  이미 닥
터 노아의 부탁에 심부름 삼아 오가던 모습까지 보였으니  그것도 설득력이
없다.  어렵게 찾아온 제이를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며 차갑게 돌려보내기도
했지만,  그녀가 다시 나타났을 때에는 두 말 않고 받아준다"는  부분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드라마가 갈등을 통해 구축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주인공 수하에게는 드
라마를 만들 만한  갈등 요소가 거의 없거나  너무나 쉽게 해결되어 버리는
셈이다.  심지어 푸른 하늘을 보여주기 위해 최종 침투를 결심했을 때에도,
장애물은 수하 자신의 결심 뿐이었을 정도다"라는 것이,  그가 분석한 『원
더풀 데이즈』 시나리오상의 문제점 중 일부이다.




이 이상에 대해서는 줄거리 누설을 방지하기 위해 이 글에서는 자세하게 기
술하지 않겠지만,  어쨌거나 강상균 작가는  "이렇게 갈등이 부족하고 드라
마가 빈약한 채 스토리가 전개되다 보니 관객이 정서적 임팩트를 갖기도 힘
들다"며,  "갈등을 통해 관객은 기대와 두려움,  놀라움을 느끼며 스토리를
체험하는 법인데,  『원더풀 데이즈』의 스토리텔링은 너무나 평탄해서  화
려한 영상을 통한 시각적 임팩트 이상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인공과 적대자의 갈등이 부족

주인공은  '누군가가 어떤 일을 하려고 대단히 노력하는데 그것을 성취하기
는 매우 어렵다'할 때 그 '누군가'라고 한다.  반면 적대자는 주인공의  그
러한 추구를 실질적으로 방해하는 그 무엇으로서,  '성취하기 어렵다'고 할
때의 그 '어려움'에 해당된다고 한다는 것이,  앞서 언급한  『시나리오 가
이드』라는 책의 내용.

따라서 적대자는 사람일 수도 있고,  주인공의 마음일 수도 있고,  자연 재
해나 괴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원더풀 데이즈』의 경우 주인공이 수하이고,  수하가 하려는 일이 사람들
(구체적으로 제이와 우디)에게 파란 하늘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그걸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적대자가 될 것이고,  주인공과 적대자의 갈등이 결국  이
작품을 이끌고 가는 핵심적인 드라마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강
상균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반복해서 말하게 되지만,  수하가 하려는 일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자연히
 그 적대자 또한 선명하지 못하다.  대표적인 적대자는  시몬이겠지만,  시
 몬은 메인 플롯의 적대자 역할보다는 제이와 연결되어 서브 플롯의 적대자
 역할을 한다.  때문에 제이가 부상했을 때 손쉽게 적대자에서 지원자로 변
 모해 버리고,  대신 긴급 투입된 부관이  파란 하늘을 보여주는 것을 막으
 려 하는데,  그 전까지 부관과 수하가 별로 서로를 신경 쓰지 않던 사람들
 이라 오히려 시몬과 부관의 갈등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노골적으로 적대자임을 선언했던 수하 자신의 마음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파란 하늘 보기에 굴복해 버리고,  침투 과정에서 에코반의 철통같은 경비
 시스템도 거의 무용지물이다.

 이렇게 보면 결국 이 시나리오는 적대자가 없거나 거의 미미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무리 캐릭터 설정에서 수하와 제이와 시몬이  각기 미래와
 과거,  현재를 상징한다며  매력적으로 묘사되고 있어도,  실제  작품에서
 이들의 모습이  설정상의 그것을 선명히 드러내  연기하지 못하고 있다면,
 플롯이 진행되고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데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
 다."




■『원더풀 데이즈』는 현재 한국 애니메이션 시나리오의 척도

이렇게 강상균 작가는 『원더풀 데이즈』의 시나리오를,  영화적 관점,  특
히 뼈대라고 할 수 있는 '구조'와 '드라마투르기'에 집중해서 조명했다.

그러면서 이 시나리오에는  "영화적으로 봐도 세련된 기법과 묘사가 사용된
부분도  많은 반면,  정보의 전달을 지나치게  대사나 나레이션에 의존하여
현실감이 떨어지는 문제점도 많다"고 말한다.


하지만 『원더풀 데이즈』의 시나리오가 관객을 불러 모으는 데에  다소 약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작품 자체를 폄하할 수는 없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말로만 시나리오의 중요성을 외칠 뿐,  실제로는 시나리오에 별다른
비중을 두지 않는 관행이 한국 창작 애니메이션계에 이미 뿌리 깊게 박혀있
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원더풀 데이즈』야 말로 시나리오의 중요성을 깨닫고
올바른 창작이 이루어지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하면서,   『
원더풀 데이즈』 정도의 작품이니까  이 정도로  구체적인 시나리오 분석도
가능하고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드라마가 이상하다든지 구조가 이상하다든지 해도,  지금의 『원더풀 데이
즈』 시나리오가 바로 한국 창작 애니메이션이 현재 뽑아낼 수 있는 베스트
시나리오고,  우리 애니메이션 시나리오의 초상이다"라는 것이,  강상균 작
가가 『원더풀 데이즈』에 바치는 마지막 고언[苦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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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데이즈』 제작진의 해명

강상균 작가는 발제 중에,  틴하우스로부터 직접 받았다는 2000년도판 시나
리오를 보여주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 2000년도판 『원더풀 데이즈』
가 솔직히 지금 버전보다 시나리오적으로는 더 낫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경학 프로듀서는 의외로 쉽게 수긍했다.  시나리오를 바꾼  이
유는 몇 가지 제작진으로서 노리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 부분이 조금 자신
들의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자충수'가 된 것 같다는 것.


『원더풀 데이즈』의 김문생 감독은 386세대이고,  비·바람·번개 등 작품
속에 내재한 이미지들이 그런 386세대의 코드에 맞아 떨어지기를  바랐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도 감독과 같은 386세대의  어느 투자자 한 명은,  완
성된 필름을 보고 감동을 받아 "내가 투자한 돈을 전부 날리더라도  이걸로
충분하다"고까지 말했다는 것이 이경학 프로듀서의 변.


강상균 작가가 지적한 시나리오의 기본 토대가 되는 '3장 구성'이 『원더풀
데이즈』에서는 제대로 비율이 맞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실은 5장 구성
으로 진행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특히 『원더풀 데이즈』를 비판하는 관객들이,  계속 지적해온 가장 중요한
문제점 중의 하나인 '캐릭터가 제대로 완성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
도,  본래 수하·제이·시몬 3명의 캐릭터가 실은 미래·과거·현실을 상징
하면서도 결국 셋이 한 사람이라는 것을 파악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그렇게 생각하면 필자가 느꼈던 『원더풀 데이즈』 캐릭터들의 어색
한 묘사도 나름대로 이해는 간다.  다만 지금까지 필자가 본 그 어떤  『원
더풀 데이즈』 평에서도,  이 3명의 캐릭터가 실은  한 사람이라는  김문생
감독의 의도를 제대로 읽어낸 관객은 아마도 없었지 않았나 싶다.

그 점을 제작진들도 이미 알고 있는 듯,  이경학 프로듀서는  이 부분에 대
해서만큼은 자신들이 실패한 부분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미국의 예와  직접 비교를 하기는 힘든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헐리
웃 영화에서는  시나리오에 엄청난 예산과 기간을 투입한다는 것은 잘 알려
진 사실이다.  한창완 교수의 말에 의하면 『니모를 찾아서』에는 시나리오
에만 50명이 훨씬 넘는 인원이 투입되었다는 것이다.  월트디즈니 같은  대
형 제작사는,  회사 내부에 극장식 스크린을 갖춰 놓고  그 날 하루 제작한
분량을 저녁시간 동안 랜더링해서 다음 날 아침에 전 제작진이 모인 앞에서
상영을 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한다면 자연스럽게 전 분야의 제작진들이 매일매일 그때까지 완성
된 부분에 대해 확실하게 이해한 상황에서,  지금까지의 문제점이라든가 타
분야의 진행 상황에 대한 이해라든가,  그런 커뮤니케이션이 두 말 할 필요
도 없이 확실하게 진행될 것이 아니겠는가.


한창완 교수는 "시나리오의 완성도야말로 제작비 절약의 지름길이다.  영화
와는 달리 애니메이션은 한 번 만들었다가 다시 수정하려면 처음부터 그 그
림들을  다시 그려야 한다.  제작비에서 시나리오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것이 헐리웃 영화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황경선 프로듀서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프랑스와 계약한 50만달러
(약 6억원)의 수출에 대해서는 한국 내의 흥행여부와 상관없이 최소 50만달
러로 이미 판매가 결정되었다고 한다.  그 전해 120만달러에 계약하자는 이
야기가 있었는데,  황경선 프로듀서의 판단으로는  180만달러까지도 가능할
것 같아 거절했는데  지금은 후회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프랑스 국내
문제로 이제는 120만달러까지 부르는 업체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50만달러
가 되었다는 것으로,  해외에서  『원더풀 데이즈』에 대한 반응은  상당히
좋다는 것이 황경선 프로듀서의 말.




또한 126억원이라는 제작비에 대해서도,  실제 제작비는 80억원이고 거기에
마케팅비 20억원,  그리고 영어 버전 제작비가 26억원이 들기 때문에  합쳐
서 126억원이라는 계산이 나오지만,  실은 영어 버전의 26억원은  미국에서
이미 펀드가 조성되어  투입되기로 되어 있기 때문에 국내에서  부담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즉 100억원만 뽑아낸다면 손익분기점은 맞출 수 있다는 것이 틴하우스 측의
설명.  굳이 126억원이라고 언론에 퍼져 있는 것을  정정하지 않는 이유는,
해외에 수출할 때 제작비가 높아야만 계약비 산정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에게야 126억원이 큰 돈이지만 외국 영화 제작비와 비교하면 아주 높은
수치가 결코 아니기 때문에,  그 정도로 말을 해둬야 수출 계약시에 최대한
높은 가격을 받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김문생 감독의,  일견 이해할 수 없는 대언론 인터뷰들에 대해서도  설명이
있었다.  "싸움이라도 일으키고 싶고,  문제라도 일으켜서 인지도가 높아지
기를 바라는 겁니다.  다 끝난 후에 떠들게 되어봤자 소용이 없으니까요."

실제로 현재 관객들에 대한 앙케이트 조사에서 24%의 인지도를 보이던 것이
마케팅을 시작하면서  40%로 높아졌고,  선호도도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 이경학 프로듀서의 설명이다.


"9시뉴스에 나가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연예 프로그램에는  한 번 나가
 려고 해도 상대를 안해줘요.  얼마 전에도 어느 프로그램에 좀 소개해달라
 고 했더니,  애니메이션을 소개할 자리가 없다는 겁니다.
 아니 『신밧드』는 소개해주면서 왜 우리는 안되냐고 했더니,  『신밧드』
 랑 한국 애니메이션이 같느냐는 거예요.  그래서 연기에 대한 집중력 문제
 로 포기했던 연예인 성우를 괜히 안썼는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이경학 프로듀서의 이 한마디에서,  현재 한국 애니메이션의 위상이 얼마나
추락했는지가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나마 대작으로 손꼽히던  『원더
풀 데이즈』가  이 정도의 대접을 받고 있으니,  10년 전 '자동차 500만대'
운운하며 21세기 한국을 이끌어갈 문화산업으로 손꼽히던  애니메이션이 어
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 통탄스러울 따름이다.

(그런데 '자동차 500만대' 이야기가 분명히 처음에는 『쥬라기 공원』 때문
에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왜 갑자기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지원하는
명목이 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애시당초 그놈의 '500만대' 운운할 때부터
솔직히 별로 기대는 되지 않았지만…….)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결국,  지금껏 제대로 된 작품을 내놓지 못했던  한국
애니메이션계 스스로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관객들은 『블루 시걸』에,  『아마게돈』에,  『RUN=DIM』에,  그리고  『
오세암』에까지,  한없는 기대와 함께  '한국 애니메이션 살리기 운동'까지
펼쳐가며  우리 작품을 응원했다.  이 이상을 바라면 솔직히 너무 한 것 아
닌가.  『블루 시걸』이 개봉된지  올해로 딱 10년째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제 좀 제발 '한국 애니메이션 살리기 운동' 같은 것 없이도
관객들을 모으는 작품을 보고 싶다는 것이 그렇게도 큰 바램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원더풀 데이즈』가 비록  관
객들 대부분의 높은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하는 작품일지도 모르지만,  어쨌
거나 분명히 지금까지의 한국 애니메이션의 수준을 끌어올린 작품임에는 분
명하다.


필자는 이 작품을 보라고 강요할 생각은 없다.  그런 운동에 동참하지 않으
면 한국 애니메이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몰아붙일 생각도  전혀 없
다.  보고 싶으면 보는 것이고,  보고 싶지 않으면  보지 않아도 좋다.  적
어도 10년을 하루 같이 기다려온 한국 애니메이션 팬들에겐,  이젠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

다만 타인에게 강권할 생각은 없어도,  필자는 개봉하면 극장으로  이 작품
을 보러 갈 생각이다.  할인 받아서 보게 될 티켓비가 솔직히 그렇게 큰 부
담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사회에서 이미 보긴 했지만,  몇천 원 정도 더
들여서 다시 한 번 감상해볼 퀄리티는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필자는 작년부터 올해에 이르기까지,  『WⅩⅢ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3─』,  『∀건담:지구광』,  『∀건담:월광접』,  『라제폰  다원변주곡
』 등을 일본 극장에서 봤다.  일본의 극장 티켓은  15000원에서 20000원에
이르는,  국내에서 개봉되지 않을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 감상하기에는 다소
고액이다.  그런 것도 봤는데,  적어도 위의 4 작품에 비해서 별로 크게 떨
어지지는 않다고 보는 『원더풀 데이즈』를,  훨씬 더 싼 값에 감상하는 것
이 아깝지는 않다.

(솔직히 저 작품들이 전부 오리지널이 아닌 시리즈물의 후속작이어서  그런
지,  극장판으로서의 완성도는  그다지 높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유일하게
『WⅩⅢ』과 동시 개봉이었던 『미니 패트』 정도가 꽤 재미있었다고 할 수
있을 듯. ;;  뭐 저 작품들도 돈이 아까울 정도까지는 아니긴 했지만.)


게다가 『오세암』도,  『RUN=DIM』도,  심지어  『헝그리 베스트 5』나 『
블루 시걸』도 극장에서 봤다.  ……이젠 뭐 한 번쯤 더 봐줘도  대세에 전
혀 지장이 없다. -_-




(마지막으로,  「씨네21」 2001년 11월에 실린 다음 기사에도  참고할 부분
이 있는 것 같아 링크를 올린다.  로그인이 필요한 페이지란 점에 주의.)
http://www.cine21.co.kr/kisa/sec-002100101/2001/11/01110914202909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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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데이즈』는 한국 애니메이션에 '희망의 날'이 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  「한국 애니메이션의 비전에 대한 토론회─『원더풀 데이즈』를
중심으로」의 진행 내용을 소개해보았다.

상당히  긴 분량이 되었지만,  그 날 이루어진 토론의  전체 모습을 전하는
데에는 아직도 부족한 면이 있다.

(특히 강상균 작가가 분석한 『원더풀 데이즈』 스토리의 '3장 이론'에  따
른 분석과,  장소별 스토리에 따른 개인적 의문점을 정리한 표가 상당히 인
상적이었다.)


이 날 하루에 한국 애니메이션의 수십 년 동안 쌓여온 문제점들이  전부 해
결된 것은  물론 아니겠으나,  오랜만에 등장한  대작 『원더풀 데이즈』를
통해서 현재 한국 애니메이션계가 갖고 있는 숙제를  대강 정리해본 자리는
될 수 있었던 듯 하다.




이제 개봉일이 다음 주로 다가온 『원더풀 데이즈』.  과연 이 작품이 한국
애니메이션에 '희망의 날'이 될 수 있을 것인지,  이제  그 결과를 눈 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원더풀 데이즈』는 우리에게 과연  '파란 하늘'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
해답은 관객 여러분 하나하나의 가슴 속에 있을 것이다.


ⓒ2003  [mirugi.com]  http://miru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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