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글:일본의 청소년 심야 외출 금지 조례 제정 움직임.
답글이 너무 길어져서 따로 글을 씁니다.
저는 여전히 일본 사회가 개방적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은 관점에 따라 표현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 ‘일본 사회는 개방적으로 가고 있지 않다’ 혹은 ‘일본 사회는 개방적으로 가고 있다’라고 말하기는 힘든 문제라고 보고요. 그보다 제가 어째서 일본 사회가 (특히 만화에 있어서) 개방적으로 가고 있지는 않다고 보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쉬울 것 같군요.
1938년 구 일본제국 내무성이 전시하 언론통제로서 만화를 포함한 아동도서 33점 발매금지 처분을 내린 것을 시작으로, 1955년 「일본 아동을 지키는 모임」「어머니회 연합회」「PTA」 등이 〈악서추방운동〉을 전개하며 만화를 학교 교정에 모아놓고 ‘분서갱유’시키는 마녀사냥식 탄압 횡행하는 등 일본의 만화 탄압은 70년 가까운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이 당시부터 「도서선정제도」「청소년보호육성법안」 등의 움직임이 있었으나, 일본의 출판계의 저항으로 1963년 출판계의 자주규제단체 「출판윤리협의회」가 결성되어 현재까지 자주규제 체제가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죠.
이후 수십 년간, 일본의 ‘정상적인 보통 지성인’들은 만화와 아동포르노, 청소년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문화를 규제할 것을 정부에 강력하게 요구해왔습니다. 그것이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 것은 말씀하신 것과는 반대로 관계에서 기본적으로 규제를 옹호하는 입장이 아니었고, 또한 해당 업계의 반발이 심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일본 만화에 대한 규제 요구가 보수층의 그것이 아니라는 증거로서는 대표적으로, 1976년 「국제 부인의 해를 계기로 행동을 일으키는 여성들의 모임」에서 나가이 고 『이야하야 南友』, 야마가미 타츠히코 『가키 데카』의 여성묘사 문제시했던 것이나, 1989년 「흑인차별을 없애는 모임」이 후지코 후지오 『도깨비 Q타로』 150화 「국제 도깨비 연합」의 묘사를 차별이라 지적하여 출판사 쇼가쿠칸에서 단행본 출판 중지한 사건, 1990년 역시 「흑인차별을 없애는 모임」이 토리야마 아키라 『Dr. 슬럼프』 등 「주간 소년점프」 게재작들의 흑인차별을 지적한 사건 등이 있겠습니다. 이 일련의 만화에 대한 (어떤 방식으로든) 규제 촉구 운동을 벌인 것은 분명히 보수층이 아니라 오히려 일본의 진보 계열이었던 것이죠.
(그로 인해 우리는 대사와 내용이 많이 삭제된 아키타쇼텐[秋田書店]판 『BLACK JACK(블랙잭)』 애장판과 문고판을 보게 된 것이죠. 국내에 학산에서 수입한 것도 문고판을 번역한 버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대사가 테즈카 오사무가 만들었던 그것과는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주로 바뀐 부분은 외국인과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용어의 순화이긴 합니다만.)
또한 관[官]계보다는 정치인들이 당파를 초월해서 만화에 대한 규제를 지지한다는 증거로서는, 1991년 7월 도쿄도 의회가 자민·사회·공산·공명·민사·대중당 등 거의 대부분의 당파 전원찬성으로, 「불건전(유해)도서류의 규제에 관한 결의」를 채택했다는 것을 대표적 사례로 들 수 있겠죠. 우리나라 상황과 대비해서 일본도 보수층과 정부 차원에서 만화에 대한 규제를 원하고 있다고 쉽게 단정해버리는 것은 위험합니다. 여러 가지 차이가 있으니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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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한 보다 상세한 내용은 제가 지난 2003년 10월 2일에 열린 제 6회 부천만화축제[BICOF] 「2003 한국 만화산업진흥정책에 대한 진단 및 과제」 세미나에서 발표했던 『만화산업의 발전을 위한 법적·제도적 과제 ―세계의 만화표현 규제사[史]를 중심으로―』에서 다루었습니다만, 현재로선 전문을 구할 방법은 없으실 듯하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